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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지지율 보수 정당, 서로 ‘자객’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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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 진정치부 기자

허 진정치부 기자

‘보수(保守)’라는 같은 지붕 아래 있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최근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지역구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지난 3일 바른정당이 발표한 조직위원장 46명에는 화성갑의 김성회 전 의원, 진주갑의 최구식 전 의원이 포함됐다. 두 사람은 각각 자유한국당의 같은 지역구인 서청원·박대출 의원과 치열한 공천 경쟁을 벌인 인사들이다. 앞서 한국당은 현역 의원이 바른정당으로 가는 바람에 공석이 된 지역구에 조직위원장을 새로 채웠다.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최명희 강릉시장, 황은성 안성시장을 각각 바른정당의 유승민(대구 동을)·권성동(강릉)·김학용(안성) 의원 지역구에 배치했다. 총선 공천 과정에서 감정이 나쁠 대로 나빠진 사람이거나 녹록지 않는 전·현직 기초단체장을 대항마로 내세운 것이다. 비어 있는 지역구를 채우는 모양새라지만 이런 행태를 놓고 “상대방에 ‘자객’을 투입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 하부구조를 튼튼히 하려는 목적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양당의 사람들이 사석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이번 대선은 어차피 지는 거 아니냐. 지방선거를 생각하면 빈 지역구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저쪽이 죽어야 그나마 우리가 사는 거 아니냐.” 이번 대선은 일단 패배로 상정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12%)과 바른정당(5%)의 지지율 합은 17%다. 대선주자 지지율을 합한 수치는 더 참혹하다. 객관적인 수치로만 봐서는 지금 상황에서 보수 진영이 재집권하기는 쉬운 상황이 아니다. 오죽하면 “다시 합당해서 이름은 ‘바른한국당’으로 하면 된다”는 ‘웃픈’ 얘기까지 나올까.

양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소멸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양당의 존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보수 정당의 기능 마비가 보수 가치의 외면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대선주자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복지정책, 중국 정부의 무도한 ‘사드 보복’에도 굴하지 않는 안보 정책 등을 제대로 다루려면 한쪽 진영의 목소리만 커져선 안 되는 까닭이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 는 지난달 24일 중앙선거관리위로부터 신당 창당준비위 신고필증을 받아 자유한국당이 버린 ‘새누리당’이란 당명을 확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까지 탄핵심판을 전후해 신당 창당에 나서면 보수 진영은 갈기갈기 찢어질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수 정치권은 없는 살림에 서로에게 ‘자객’까지 투입해야 할까. 과연 그 칼에 베이는 피해자는 누가 될까.

허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