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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맹모' 선택받아 폐교 벗어난 초등학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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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진호내셔널부 기자

박진호내셔널부 기자

“집에서 1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오케스트라 때문에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학교를 선택했어요.”

몇 년 전 폐교 직전까지 갔던 강원도 농촌 초등학교의 입학식에서 한 학부모가 한 말이다. 특성화된 음악 교육을 앞세워 폐교 위기를 넘긴 시골 학교들이 있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신왕초와 원주시 호저면 만종초 얘기다. 이들 학교는 교내 오케스트라 운영 이후 전교생이 두 배 이상 늘었다.

학생이 늘어난 비결은 지난 2일 있었던 신왕초 입학식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조영무(58) 교장이 신입생 7명에게 바이올린이 담긴 가방을 하나씩 건네자 학생·학부모는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 학교는 2012년 전교생이 18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에 처하자 고심 끝에 음악 교육 특성화를 추진했다.

강릉시 신왕초등학교 신입생 7명은 지난 2일 입학식에서 바이올린을 선물 받았다. [사진 박진호 기자]

강릉시 신왕초등학교 신입생 7명은 지난 2일 입학식에서 바이올린을 선물 받았다. [사진 박진호 기자]

바이올린과 첼로·콘트라베이스·플루트 등을 배울 수 있는 ‘챔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1~2학년은 바이올린, 3학년부터는 첼로·콘트라베이스·클라리넷·플루트를 선택해 배운다. 지도 강사는 6명인데 대부분 강릉시립교향악단 소속 전문가다. 수업은 주 4회 2시간씩 한다. 하지만 교육비는 모두 무료다. 이 학교 학생은 현재 39명이다. 이들 중 30명은 대부분 왕복 1시간가량 걸리는 강릉 시내에 거주한다.

폐교 직전의 시골 학교가 이처럼 의미 있고 특별한 시도를 하자 강릉 시내의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를 한 번쯤 보내고 싶은 학교로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

2013년 전교생이 44명에 불과했던 원주시 호저면 만종초의 올해 학생 수는 94명이나 된다. 학생 증가는 2013년에 생긴 ‘국악 오케스트라’ 덕분이다. 만종초 재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다양한 전통악기를 다뤄볼 기회를 얻는다. 3학년부터 가야금과 해금·아쟁·대금·피리를 비롯해 타악기인 장구·북·꽹과리를 배울 수 있다. 지난해엔 강원도소년체육대회에 초청돼 공연도 했다.

김동익(50) 교감은 “주변에 전통악기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없다 보니 교육열이 높은 원주 시내 학부모들의 관심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 내 초등학교 대부분은 매년 학생 수 감소로 고민이 깊다.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2012년 402개 초등학교에 재학생이 8만8751명이었으나 불과 4년 만인 지난해에는 387개 학교에 7만6983명으로 감소했다. 올해 ‘나 홀로 입학식’을 치른 학교가 24곳이고 심지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14곳이나 됐다.

이제 이런 학교들도 폐교를 피하려면 인근 도시 거주 ‘맹모(孟母)’들의 특별한 선택을 받을 다양하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박진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