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섣부른 책임 추궁보다 AI 종식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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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경제부 기자

조현숙경제부 기자

“조류인플루엔자(AI)를 같이 막아내겠다며 정부 시책을 충실히 따랐다가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충북 진천군에서 8만 마리 닭을 키워왔던 최창석(57)씨의 목소리는 높았다. 논란의 단초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바꾼 소득안정자금 지급 기준이다. AI 발생 인근 지역은 가금류 출입이 제한된다. 병아리를 들이지 못해 휴업해야 했던 방역대 내 농가엔 정부 지원금이 나간다. 올해 이 금액이 마리당 145원으로 깎였다. 3년 전(마리당 345원)의 절반도 안 된다.

최씨는 “AI 발생 농가가 받는 살처분 보상금보다 낮은 액수”라며 “AI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입식(병아리를 들임)하지 않았던 농가의 피해가 오히려 더 크다”고 말했다.

토종닭 6만 마리를 기르다 AI 때문에 휴업한 이윤희(59)씨 역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100일 치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해도 평소 매출의 3분의 1이 안 된다”며 “이자나 생활비, 유지비는 다 뺀 순수 생산비만 따져도 그렇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AI 보상금을 낮추고 농가에 대한 책임과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아 다른 농가에 피해를 입힌 농장주에 대한 페널티를 강화하는 건 맞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농식품부의 조급증은 소득안정자금 기준 사례처럼 선의의 피해자도 늘리고 있다. 초기 대응 과정에서 ‘골든 타임’을 번번이 놓친 농식품부 스스로에 대한 페널티 없이 농가에만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이다.

AI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일 전북 고창군 농장에서 AI 감염이 의심되는 오리가 나왔다. 전국 각지 야생 조류에서도 AI 바이러스가 산발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6일 AI 첫 발생 이후 3개월째를 맞아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 사이 전국 353개 농가로 AI가 번졌고 살처분된 닭·오리 등 가금류는 3379만 마리에 이른다.

한국을 찾았던 철새가 날씨가 따뜻해지며 다시 북상하는 3월은 ‘AI 재확산이냐, 방어냐’를 결정하는 변곡점이다. AI 상주국 오명을 막기 위해서라도 농가와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의 협력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은 차단 방역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AI를 완벽하게 종식시킨 후에 세밀한 조사·감사를 거쳐 책임 소재를 가리고 그에 걸맞는 대책을 마련하는 게 옳은 수순이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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