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공립대 총장 ‘블랙리스트’의혹 철저히 규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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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화계에 이어 교육계에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장기간 총장 공석 사태를 빚은 국공립대에서 청와대의 일방적 ‘임용 거부’ 전횡 때문이라는 증언과 폭로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전국국공립대교수연합회는 “파행적인 총장 임용에 국정 농단 세력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며 박영수 특검팀에 수사까지 요청했다.

 장차관급인 국공립대 총장은 공무원 신분이다. 대학이 직·간선으로 뽑은 후보 두 명(1, 2순위)을 추천하면 교육부 장관이 한 명을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어제 총장 공백 27개월 만에 신임 김상동 총장이 취임한 경북대도 2년 전 그런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교육부는 1순위인 김사열 후보를 계속 퇴짜 놓다가 얼마 전에야 2순위인 김상동 후보를 임명했다. 행정절차법상 부적격 사유에 대한 설명은 당연한데 교육부는 입을 다물었다. 경상대·순천대·충남대·한국해양대도 비슷했다. 그러던 중 뒤늦게 교육부 고위 간부가 “청와대에서 오더가 내려왔다”고 폭로한 것이다. 청와대가 정부에 비우호적인 후보들을 낙인찍어 임용 배제를 지시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김사열 교수의 주장은 더 충격적이다. 지난해 9월 21일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2순위를 강력 주장해 자신이 탈락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총장이 되려면 충성서약서를 쓰라는 압력까지 받았다는 폭로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 개입설까지 제기했다. 충남대 총장 인선에 이재만 전 비서관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등 한양대 인맥은 물론 최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욕적인 일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청와대 스스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31조 4항)을 유린한 중대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공립대 10여 곳이 총장 임용 퇴짜 사태를 겪었고, 일부 대학은 여전히 파행 상태다. 특검팀은 의혹을 남김없이 수사해 국정 농단 세력이 대학까지 어떻게 농단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