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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민 분노에 불지른 대통령 신년 간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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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의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는 여전히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임기를 끝까지 채우고 싶다는 오기만 부렸다. 탄핵안 가결 이후 누그러질 조짐을 보여온 국민의 분노에 새해 벽두부터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의혹에 부인·모르쇠로 일관
지지층 결집·탄핵기각 유도 꼼수
공식일정 중단과 탈당만이 해법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불과 23일 만에 공개일정을 가진 것부터 부적절했다. 더욱 우려되는 건 박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드러낸 상황 인식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은커녕 모든 의혹에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인(私人) 최순실과 한 몸이 돼 국정을 농단한 의혹에 대해 “최와 공모하거나 봐준 일은 손톱만큼도 없다”며 부인했다. 삼성 합병 지원 의혹에 대해선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특검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청와대 지시로 한 일”이라 증언했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뗀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모르는 일”, 차은택씨의 인사개입 의혹엔 “누구와 친하다고 누구 봐줘야 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은 제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농단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검찰·특검·국회·헌재의 출석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돌연 ‘3금(촬영·노트북·메모 금지)’을 조건으로 기자 간담회를 자청했다. 불리한 보도는 막고, 하고 싶은 말만 퍼지게 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나아가 특검과 헌재를 압박해 탄핵을 기각시키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면 과장일까.

 박 대통령은 26년 만의 보수여당 분열에 대해 “말하기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의 실정으로 보수가 추락한 데 대한 책임론을 피하려고 말을 자른 듯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관저에 외부인이 들어왔다’는 의혹에도 “기억을 더듬어보니”라는 표현을 쓰며 부인했다. 자신의 해명을 뒤집는 증언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느낌이다. 이런 식의 해명을 진정성 있다고 믿어주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박 대통령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니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민심에 아랑곳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1일 인적 청산 범위에 대해 “언론에서 보도되듯 확대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어 사회봉사를 10시간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책임이 큰 여당의 지도자가 ‘봉사 10시간’으로 때우고 가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인적 청산의 ‘범위’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면 ‘리셋 코리아’의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할 일은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를 뺏은 뒤 자기변호를 위한 간담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새누리당을 떠나 당과 국회가 개혁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국정 농단의 오점을 조금이나마 씻고 국민의 용서를 구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