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회가 대통령 탄핵 안 해도 국민 선거권 침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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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내부 9인 재판관석 [중앙포토]

헌법재판소 내부 9인 재판관석 [중앙포토]

국회가 중대한 위법을 한 대통령의 탄핵소추 절차를 밟지 않는다 해도 국민 선거권 침해가 아니라는 헌법재판소 해석이 나왔다. 따라서 이같은 국회의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는지도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헌법소원 각하 결정을 받은 김주연(28) 씨는 1일 이 같은 내용의 헌재 결정(2016헌마944)을 공개했다.

김씨는 앞서 지난달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중 최순실에 국가기밀 자료를 유출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한 것을 시인했는데도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지 않는 것(탄핵소추 부작위)은 헌법 위반”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국민인 자신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되고 둘째, 국민주권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재는 2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각하했다.

첫째, 국민 기본권인 선거권은 대표를 뽑을 권리이지 물러나게 할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헌재는 “헌법에서 국민소환 등을 규정하지 않은 이상 국민 기본권으로 공무원을 공직에서 배제할 권리를 국민에게 부여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는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의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다. 헌재는 “헌법65조 1항은 국회의 탄핵소추권을 의무가 아닌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공권력이 의무가 없을 때는 헌법소원이 부적절하다”는 기존의 판례(98헌마7)를 제시했다.

헌재는 이 사건이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훼손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논하지 않았다. “헌법의 기본원리가 훼손되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국민 기본권이 현실적으로 침해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각하 결정은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사전심사해 내렸다. 사전심사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서 사건을 다루기 전 청구요건을 갖추었는지, 심사할 필요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단계다. 김씨의 청구가 각하됨에 따라 헌재는 박 대통령의 위법 행위나 국민주권주의 훼손 같은 사건 내용에 대해서는 심리하지 않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국민에게 선거권이 있으니 공직자를 뽑을 권리는 있고, 소환권( : 공직자를 임기 전에 국민투표로 파면할 권리)은 헌법에 명시돼있지 않으니 내쫓을 권한은 없다고 본 다소 평면적인 해석”이라며 “소환권을 국민 선거권의 구체적 권리로 만들려면 국회가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는 국민소환제가 없다. 주민투표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을 파면하는 주민소환제만 있을 뿐이다(지방자치법 20조).

한 교수는 “이 사건 핵심은 행복추구권보다는 국민주권의 원리”라며 “국민이 준 주권을 대통령이 다른 이에게 넘겼는데도 국회가 이를 국민에게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경우 헌재에서 다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인 청구인 김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는데 국회도 탄핵에 나서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국민에게 남은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국민소환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헌법소원을 냈다”고 청구 이유를 밝혔다.

헌재는 현재 탄핵 관련 사건 6건을 사전 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 2건과 대통령에 대한 중간수사발표 위헌확인, 이번 사건 특검법 위헌확인 사건 등이다.

헌법재판소 판례로 알아보는 대통령 탄핵 요건 Q&A

대통령의 법적 권한 내에서 결정한 일들은 통치행위이므로 헌법소원 대상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국가작용이라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는 헌법재판소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
(93헌마186 김영삼 대통령 긴급재정명령 등 위헌확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너무 못한다. 탄핵 사유가 될까?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대통령이 되기 전 중대한 법을 어긴 사실이 취임 후 드러났다면?
취임 이후에 대해서만 탄핵심판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은 물론, 당선 후 취임까지의 행위도 탄핵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재임 중 있었던 측근 비리는 탄핵 사유인가?
대통령이 그 행위를 지시•방조하였다거나 불법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면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대통령이 임기 중 법을 위반한 것이 분명하면 탄핵하는 것인가?
탄핵은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를 말한다. 대통령 파면은 효과가 중대하기 때문에 파면을 결정하는 사유도 중대해야 한다.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그러면 대통령 탄핵은 언제 가능한가?
대통령이 법 위반 행위를 위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한해서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행위 외에 뇌물수수, 부정부패, 국가의 이익을 명백히 해하는 행위가 전형적인 예다.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언급된 헌재 판례 전문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
93헌마186 김영삼 대통령 긴급재정명령 등 위헌확인
(http://www.korealaw.go.kr/detcSc.do?menuId=3&subMenu=2&query=2004%ED%97%8C%EB%82%981)

2004헌나1 노무현 대통령 탄핵
(http://www.korealaw.go.kr/detcSc.do?menuId=3&subMenu=2&query=2004%ED%97%8C%EB%82%981)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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