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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 한·미 FTA 전면 재협상 땐 5년간 31조 수출 손실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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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9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 대선 결과가 한국 경제·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향’과 관련한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차기 미 행정부에서도 대북 압박을 중시하는 대북정책 기조는 기본적으로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윤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 오종택 기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9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 대선 결과가 한국 경제·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향’과 관련한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차기 미 행정부에서도 대북 압박을 중시하는 대북정책 기조는 기본적으로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윤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 오종택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의 ‘대이변’이 한국 경제에 격랑을 몰고 왔다. 초강대국 미국에 등장한 첫 ‘아웃사이더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주요 통상 현안의 앞길을 안갯속에 빠뜨렸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정제되지 않은 극단적 정책을 표명해 왔다. 그만큼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은 과거 미국 정권 교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미국 뉴욕 월가가 트럼프 당선인을 ‘불확실성 맨(Mr. Big Uncertainty)’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경제 리더십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장수 없이 전쟁을 치러야 할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당장 한·미 FTA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한·미 FTA를 ‘재앙’이라고 비판하며 전면 개정을 주장했다. 주요 근거는 한·미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이다. 지난해 한국은 338억5000만 달러의 대(對)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한·미 FTA가 발효된 2012년(199억4000만 달러) 이후 증가세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FTA 재협상 요구와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한 수입 규제 장벽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미 FTA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데다 관세를 높이고 한국의 환율 정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등 전방위 통상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선거 내내 전면개정 주장
관세·환율 등 전방위 압박 우려도
일각선 “취임 뒤 정책 달라질 수도”
“최순실 사태로 동력 약화된 상황
경제사령탑 빨리 결정해 대책을”

가뜩이나 부진한 한국 수출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대미 수출 규모는 698억3000만 달러다. 중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규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전면 재협상이 현실화될 경우 2017~2021년 5년간 총 269억 달러(약 31조원)의 수출 손실이 빚어진다고 추산했다.

세계적인 보호무역 흐름 강화도 한국에 악재다. 트럼프 당선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 극단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보다 더 강력한 트럼프의 보호무역 바람은 부진한 글로벌 교역을 더 얼어붙게 해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미 안보 균열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미국 금리 인상과 겹쳐 외국인 자금의 급속한 이탈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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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실제 정책은 다른 양상으로 흐를 거란 관측도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자유무역에 친화적인 당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고 내다봤다.

예상 외의 결과에 정부는 분주히 움직였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트럼프의 당선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 파급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TPP의 미 의회 비준 여부와 한·미 FTA 등 통상 현안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통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여파로 정책 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급변하는 통상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지 미지수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국제 통상 질서가 급변한 상황에서 우리는 경제 사령탑도 없는 처지”라며 “경제부총리를 빨리 결정해 경제 리더십을 회복하고 통상정책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남현·이승호 기자, 뉴욕=이상렬 특파원 ha.namhyu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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