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추석 무렵 개헌 결심…대통령이 논의 주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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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4자.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1만 자가 조금 넘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원고의 4분의 1을 개헌 문제에 할애했다. 이 2454자에 정치권은 요동쳤다.

이 시점에 개헌론 왜 던졌나
“개헌 논의 땐 모든 것이 블랙홀”
2년 전 태도와 완전히 달라져
미리 눈치 챈 정진석 개헌론 불 지펴
일부선 “국정 동력 찾겠다는 의지”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의 설명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개헌을 결심한 시점은 지난 추석 연휴(9월 14~18일) 끝 무렵이었다. 박 대통령은 연휴 직전 정무수석실에서 올린 보고서를 검토한 뒤 개헌 준비를 지시했다. 디데이였던 24일 공개된 박 대통령의 연설은 한 달여 이상 논리를 다듬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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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이날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블랙홀같이 빠져들 것”(2014년 1월 신년 회견),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2016년 4월 편집·보도국장 간담회)고 했던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김태흠 의원조차 “오늘 아침에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8월 대표가 된 뒤 첫 청와대 독대 때 (박 대통령에게) 개헌에 대한 건의를 드렸고 이후에도 계속 건의를 드렸다”고 소개했다. 새누리당에선 이 대표가 유일하게 발표 2~3일 전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청와대 내부의 기류 변화는 읽었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중심제는 한계에 왔다”며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이 발언은 ‘청와대와의 교감설’로 증폭돼 파장을 낳았다. 급기야 9일 김재원 수석이 나서 “지금은 개헌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고 제동을 걸었다. 김 수석은 24일 “정 원내대표가 앞서 나가길래 이러다간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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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하며 본청 현관까지 마중 나온 정세균 국회의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은 이번이 네 번째이고, 국회 연설로는 여섯 번째다. 왼쪽부터 박 대통령, 진정구 국회 입법차장, 정 의장. [사진 김성룡 기자]

박 대통령은 왜 이 시점에 개헌을 공식화했을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개헌 추진 방침이 지난 9월에 정해졌지만 시점을 지금으로 잡은 것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히는 것이 온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개헌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이 문제를 논의할 중심이 될 의원들 앞에서 밝히기 위한 것일 뿐 다른 고려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지난 8·15 기념사에 개헌 문제를 넣을까도 고민했었지만 당시엔 대통령의 결심이 서기 전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연설에서 ‘국민들의 약 70%’라고 밝혔듯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익명을 원한 친박계 의원은 “야당이 국면전환용이란 이유로 계속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를 주도해 국정 동력을 되찾겠다는 의지도 읽힌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는 박 대통령이 설치를 천명한 ‘정부 내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과 국회의 개헌 특별위원회가 두 축을 이루게 될 전망이다. 김 수석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대통령이 정부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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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상 개헌안 발의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151명 이상) 또는 대통령이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공고한 뒤 국회는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찬성 의결 시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며 유권자의 과반수 투표, 투표자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정치권에선 “과거 대통령 중임제를 공약했던 박 대통령 주변의 기류가 ‘대통령은 외치를 맡고 국회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이원집정부제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가 가능한 조합”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러나 김 수석은 “어떤 체제를 대통령이 생각한다고 해도 무조건 관철될 수는 없다”며 “(정부 형태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글=서승욱·위문희 기자 sswoo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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