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가을장마에 김영란법까지…김해 화훼농가 깊은 시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기사 이미지

청탁금지법 여파로 꽃 소비가 줄고 가격마저 떨어졌다. 18일 경남 김해시 대동면의 정필재씨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거베라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경남 김해시 대동면에서 20년째 화훼농사를 하는 정필재(50)씨. 그는 요즘 5950㎡ 넓이의 비닐하우스를 보면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등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뒤 재배 중인 거베라 가격이 크게 떨어져서다. 결혼식 등 행사가 많은 5·10월은 화훼농가의 최대 성수기다. 꽃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때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축하 화환에 주로 사용하는 국화의 한 종류인 거베라도 마찬가지다.

경조사비 상한선 10만원 제한에
결혼식 많은 성수기에도 소비 줄어
국화 대국은 법 시행 후 절반 값
“연료비 드는 겨울엔 농사 접을 판”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정씨는 “지난 여름 무더위와 가을장마로 올해 거베라 수확량이 예년(1400단, 1단 10송이)의 절반 수준으로 예상된다”며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오히려 지난 추석 때 1단에 4500원 하던 거베라가 김영란 법 시행으로 3000원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조사비(한도 10만원)에 화환 값을 합산하도록 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꽃 소비가 급격히 줄고 가격마저 크게 떨어져 화훼농가가 울상을 짓고 있다.

기사 이미지

가격이 내리긴 국화(대국)도 마찬가지. 지난 9월 초까지 7000원~1만원하던 대국(大菊)은 현재 절반 수준인 3000~5000원으로 떨어졌다. 20년째 8264㎡의 비닐하우스에서 대국을 재배 중인 성현진(53)씨는 “이 정도 가격이면 모종값과 인건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며 “연료비가 드는 겨울철에도 이 가격이면 화훼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부산경남 화훼농협 경제사업장의 꽃 경매 가격을 봐도 법 시행 후인 9월 30일은 시행 전인 9월 2일의 50% 수준이었다. <표 참조> 지난 10일 기준으로 꽃 도매가격이 일부 품목에서 회복되긴 했으나 여전히 예년에 못 미친다.

안채호(51) 대동화훼작목회장은 “공무원 잡으려다가 화훼 농민 다 잡게 생겼다”며 “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국내 화훼산업이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훼 소비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종하 인제대 글로벌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현재 화훼는 대부분 경조사에 사용돼 김영란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론 생활 속 꽃 소비 문화를 조성하고, 장기적으론 정부·자치단체가 화훼를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위성욱 기자 we@joongnag.co.kr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