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만 3명, 한국유도 ‘어벤져스’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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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

조센진 놀림받던 재일동포 안창림
하루 5끼 몸무게 10㎏ 늘린 안바울
60㎏급 김원진과 막강 트리오 구성
송대남 스파링 파트너였던 곽동한
90㎏급 2위, 강력한 금메달 후보

송대남(37) 남자유도대표팀 코치가 훈련 종료를 알리자 50여 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쉬며 기력을 회복한 선수들은 부리나케 도복을 챙겨 식당으로 향했다. 밀려드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텅빈 체육관에는 4명의 사나이가 남아 추가 연습을 자청했다. 73㎏급 안창림(22), 66㎏급 안바울(22), 60㎏급 김원진(24), 90㎏급 곽동한(24) 등이었다.

이들은 ‘한국 유도의 어벤져스’라 불린다. 할리우드 영화 속 영웅들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안창림·안바울·김원진은 국제유도연맹(IJF) 세계 랭킹 1위, 곽동한은 2위다. 지난 5월까지는 네 선수 모두 1위였다.

유도 종주국 일본을 포함한 경쟁국 사이에선 한국 유도가 경계 대상 1호다. 리우 올림픽을 준비 중인 한국 대표팀은 김재범(31)과 왕기춘(29)을 앞세웠던 2012년 런던 대회때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정복(62) 감독은 “한국 남자 유도가 이렇게 강했던 적이 또 있을까 싶다”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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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림은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온 몸에 성한 곳이 없다”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고무줄을 당겼다. 안창림은 그 누구보다 땀방울의 힘을 잘 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 안창림은 어릴적 ‘조센진’이라 놀림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유도를 시작한 이후 유도 명문 요코하마 토인대부속고에 진학하기 전까진 줄곧 후보선수였다. 고교 입학 당시 테스트에서 동급생 10명 중 꼴찌였다.

그런 안창림을 일으켜 세운 건 ‘지독한 연습’이었다. 그는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연습벌레다. 업어치기가 제대로 안 되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될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했다. 쓰쿠바대 2학년이던 2013년 전일본학생선수권 73㎏급에서 우승한 뒤 일본 유도계로부터 귀화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대신 2014년 2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안창림은 “한국 사람은 태극마크를 달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른 것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9개월 만인 2014년 11월 안창림은 73㎏급 국가대표 1진이 됐다. 기술 위주의 일본, 체력을 중시하는 한국, 두 나라 유도의 장점을 모두 흡수한 ‘완전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안창림은 “처음엔 문화 충격도 받았다. 일본에선 오전에 기술 위주로 1~2시간 훈련하는 게 전부인데, 한국에서는 웨이트트레이닝에 실전 훈련까지 쉴 틈이 없었다”면서 “훈련량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질 수 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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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급 강자 안바울은 3년 전까지만 해도 60㎏급 선수였다. 고교 시절 압도적 1인자였지만, 성인 무대에서 2년 선배 김원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고심 끝에 체급을 올린 안바울은 66㎏급 선수가 되기 위해 음식과의 전쟁을 벌였다. 그는 “체중을 불리기 위해 하루 5끼를 먹었다. 족발·치킨·피자 등 안 먹어본 음식이 없다”고 털어놨다. 평소 체중을 62㎏에서 72㎏까지 늘린 그는 새 체급에 순조롭게 적응하며 2014년 11월 국가대표 1진을 꿰찼다. 안바울은 지난해 처음 참가한 세계선수권에서 막바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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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동갑내기 김원진과 곽동한은 4년 전 런던 올림픽엔 스파링 파트너 자격으로 나갔다. 남자 81kg급 김재범과 90kg급 송대남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김원진은 “리우에서 동갑나기 곽동한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 ‘동기의 전설’을 써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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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도 어벤져스의 걸림돌은 일본이다. 안창림은 ‘라이벌’ 오노 쇼헤이(23)와 네 번 맞붙어 모두 졌다. 안바울은 에비누마 마사시(26)에 2전 2패, 김원진은 다카토 나오히사(24)에게 4전 4패다. 곽동한 만이 혼혈 선수 마슈 베이커(23)에 2승1패로 앞서 있다. 상대전적은 불리하지만 4명의 선수 모두 “랭킹과 전적은 큰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안창림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실력 차는 종이 한 장 차에 불과하다. 오노를 비롯해 모두 일본에선 괴물로 불리던 선수들이다. 그 선수를 넘어야 진정한 세계 최고가 된다”고 했다.

체육관을 나서기 전 힘겨운 훈련을 어떻게 견디는지 물어봤다. 고무줄을 양손으로 감아쥔 안창림이 말했다. “한 번 더 메치고, 한 번 더 당기면 메달 색이 바뀔 거라 믿어요. 새로운 한판승의 사나이가 되고 싶습니다.”

피주영·김원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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