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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동해서 석유 캐는데 한국은 개점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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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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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
경제부문 기자

일본 언론이 33년 만에 첫 자국 내 유전 개발 소식에 들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 7일 야마구치현(山口縣)에서 북동쪽으로 140㎞ 떨어져 있는 곳에 일본 정부가 석유 탐사를 막바지로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석유 탐사 지역은 경북 포항에서 약 150㎞ 정도 떨어진 동해상에 있다. 일본 정부도 “6~8월 시추 실험을 통해 상업화 여부를 최종 확정하겠다”며 보도를 시인했다. 상업화에 성공한다면 일본 영토 내 유전 개발은 1983년 이후 처음이다.

국내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미 3차원 조사를 끝내고 시추선을 투입했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상당한 매장량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새로운 유전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지점에는 동해 1가스전이 있다. 1998년 한국석유공사에서 개발해 현재까지도 연간 40만t의 가스를 생산하는 유전이다. 2008년 동해 가스전 개발에 참여했던 서울대 박근필(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일본의 시추 결과는 거리가 가깝고 지층 구조가 유사한 국내 동해 유전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원개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일본의 소식을 듣고도 하늘만 쳐다 보는 상황이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포함해 국내 자원 개발 관련 현직 인력은 38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예산이 없으니 직원이 있어도 할 일이 없다. 개점 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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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올해 정부가 책정한 국내외 자원개발 예산은 1264억원. 이명박 정부 초기 2008년 관련 예산은 이보다 10배인 1조2234억원에 달했다. 특히 올해는 자원개발에 쓰이는 융자 지원 예산을 지난해 1438억원에서 0원으로 전액 삭감했다.

한국이 잔뜩 움츠린 사이 일본과 중국은 저유가로 남는 에너지 예산을 활용해 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올해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해외 자원 개발에 3조 엔(약 3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도 해외 유전 개발권을 늘리면서 소유 원유 매장량이 중동 국가들의 수준을 넘보고 있다.

김현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자원개발 PD는 “자원 개발은 유가가 비쌀 때 나오고 쌀 때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며 “일본과 중국이 이렇게 나오는데 우린 가만히 바라만 봐야만 하나”고 푸념했다. 인하대 신현돈(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돈으로 평가가 안 돼서 그렇지 지난 10년 동안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됐다. 이제 좀 성과를 내고 싶은데 기회조차 오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이 동해에서 유전 개발 상업화에 성공해 첫 축하 행사를 여는 날까지도 우리의 개점 휴업 상태가 계속될까 두렵다.

김민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