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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어민들이 나설 때 정부는 뭐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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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익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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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진
사회부문 기자

“언제까지 어민들이 목숨을 걸고 중국 어선을 직접 끌고 와야 합니까.”

서해 연평도 어민들이 요즘 부글부글 끓고 있다. 엄연한 대한민국 영해를 중국 어선들이 불법으로 침범해 어족 자원을 싹쓸이해 가는데도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중국 어선들의 대규모 불법 조업이 18년째 계속되면서 우리 어민은 어획량 급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중국 어선들은 그물코가 촘촘한 저인망 쌍끌이식 조업으로 어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참다 못한 어민들은 지난 5일 새벽 어로통제구역에까지 들어가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어선 두 척을 나포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불과 550m 못 미친 지점이었다.

나포 사건 이후 어민들은 지금 더욱 허탈해하고 있다. 중국 어선들이 나포 사건을 비웃듯 7일까지 사흘째 연평도 앞바다에서 보란 듯이 불법 조업을 하는데도 우리 정부가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100여 척의 중국 어선이 연평도 해안 150여m까지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데, 이게 우리 영해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할 정도다.

사실 문제의 해역은 우리 군과 해양경비안전서(해경)의 대대적 단속이 간단치만은 않은 곳이다. 해경이 단속에 나서면 중국 어선들은 NLL 북방의 북한 측 수역으로 달아나 버린다. 효과적인 단속이 어려운 이유다.

NLL 부근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위험 수역이다. 이 때문에 만에 하나 단속 과정에서 어선들이 월선이라도 하게 되면 남북 군사 분쟁의 빌미를 북한 측에 줄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어민들이 직접 중국 어선을 나포하도록 사실상 방치하거나 등을 떠미는 것은 국가로서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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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연평 어민들에게 나포된 중국 선원들이 부두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 인천해경]

정부는 어민들과 시민단체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 남북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해 남북 어민들이 공동조업을 한다면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도 완화할 수 있고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도 방지할 수 있다”고 지난 6일 성명서를 냈다. 현지 어민들은 “남북한 긴장완화를 전제로 북한 측이 조업한 수산물을 우리 어민들이 구입해 국내 시장에 파는 남북 수산 교역도 검토해보자”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서해의 극한 대치와 갈등을 줄이려는 한·중 양국 정부의 진지한 대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양국은 해양경계획정 담판에 진정성을 갖고 임해야 한다. 결론을 못 내고 계속 미루는 것은 무책임하다. 역대 최고라는 한·중 관계가 단순히 외교적 수사에 머물면 곤란하다. 서해 바다의 평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전익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