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제1당 만들고…강퇴 대신 명퇴 택한 김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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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 당선자-당무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했다. 김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가고 있다. 이날 더민주는 오는 8월 말~9월 초 정기국회 이전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뽑기로 했다. 이때까지 김 대표의 비대위 체제가 유지된다. [사진 박종근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강퇴’ 대신 ‘명퇴’를 택했다. 김종인 체제의 운명을 결정하는 3일 당선자·당무위 연석회의 인사말에서 스스로 퇴진을 말했다.

김 대표, 스스로 퇴진 입장 밝히자
30분 만에 전대 시기 만장일치 결정
박범계 “더민주서 이런 총회 처음”
측근 “김, 경제비상기구 챙긴다 말해”
당장 비례 버리고 당 떠나진 않을 듯

김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솔직히 내 자신이 비대위를 연기해 달라 요청한 적도 없고 연기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며 “이 멍에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시다고 생각되면 하시라도 비대위를 해산하고 떠날 용의가 있다”라고 못 박아 명퇴가 자신의 결정이 아님도 분명히 했다.

김 대표가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자 ‘격론’이 예상됐던 연석회의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5명의 의원이 발언했지만 이견은 없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지 30분 만에 박수를 통한 만장일치로 전당대회 시기가 8월 말~9월 초로 정해졌다. 회의장을 나서는 박범계 의원이 “더민주에 들어와서 이런 총회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성호 의원도 “잘 된 거다. 대표가 말씀을 잘 하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당 대표실로 돌아왔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하루 종일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던 김 대표는 당무위에서 안건이 처리된 뒤 “내가 얘기한 그대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결과가 만족스러운지’를 묻자 “얘기를 (이미) 했는데 무슨 만족은…”이라는 말을 남기고 대표실을 나갔다. 김 대표는 5~10일 휴가를 떠날 계획이라고 대표비서실에서 전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김 대표가 오늘(3일) 새로 설치하기로 의결한 ‘경제비상대책기구’를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 구성과 권한까지 대표에게 위임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지에 대해 김 대표 주변에선 역설적으로 더민주가 가는 길에 달렸다고 했다. 당선자가 아닌 김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당장 비례대표직을 버리거나 당을 떠나진 않을 것”이라며 “김 대표는 이번 총선으로 당의 절반가량이 합리적 인사들로 교체됐다는 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의 입장은 ‘당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줘 보자’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지도부가 다시 삼고초려를 한다면 수권정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겠지만, 운동권당으로 돌아가면 ‘백고초려’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에서도 “대표에 대해 추호의 관심도 없는 사람을 놓고 추대니 경선이니 얘기하는 걸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정치가 최소한의 인격과 예의는 갖춰줘야 하지 않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측근 인사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폐기한 박근혜 대통령과 결별할 때는 다소 섭섭함과 서운함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호남 패배의 책임을 떠넘기고 말을 바꾸는 전형적인 운동권적 수법에 배신감과 모욕을 느꼈던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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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이제 믿을 수가 없게 되지 않았느냐. 신뢰가 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한때 가까웠던 손혜원 당선자가 총선이 끝난 뒤 “노인은 바뀌지 않는다”는 등의 표현으로 비판한 데 대해서도 “운동권과 그 세력들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했다. 손 당선자는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다.

김 대표 주변에선 정계 개편에 대한 전망도 나왔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여야 모두 당의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8~9월께면 경제 상황이 악화돼 정계에도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며 “더민주의 전당대회와 맞물린 시점이기 때문에 더민주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김 대표가 (정계 개편의) 중심에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글=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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