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무릎 꿇은 최경환·문재인…‘선거트랄로피테쿠스’ 또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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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직함을 뗀 후인 지난 2월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의 모습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이른바 ‘진박’ 예비후보들의 개소식을 돌며 “꿀리는 사람이 반기를 든다” “정부 뒷다리나 잡는다” “아군에게만 총질하는 의원이 무슨 소용이냐”며 같은 당 ‘유승민계’ 의원들을 비판했다. 이들 상당수가 공천에서 탈락할 거란 예고였다.

고개 세우고 180석 자신하던 여당
‘공천 학살’ 역풍에 반성 퍼포먼스
야권분열 더민주도 납작 엎드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 ‘퇴화’ 씁쓸

경제부총리 시절의 ‘최 부총리’는 달랐다. 2014년 7월 취임 회견에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대신 10조원대의 기금을 활용해 경기 부양을 하겠다”며 나긋나긋했다. 각료에서 정치인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이 거칠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 초 새누리당에선 “180석 이상 충분히 가능하다”(김무성 대표), “지금 의석에서 20석만 더하면 180석이 될 수 있다”(원유철 원내대표)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4·13 총선에서 압승할 거란 자신감이 당 전체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친박계와 뜻이 다른 의원 일부를 공천에서 배제(컷오프)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승민계 의원들이 컷오프된 ‘3·15 공천 학살’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공천 학살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고 강제 컷오프된 뒤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이 새누리당 후보와 경합을 벌이면서 ‘과반(150석) 붕괴’ ‘대구 반타작(6석) 위기’설이 번졌다.

결국 TK 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인 최 의원은 지난 6일 새누리당 대구 총선 후보 11명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같은 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도 ‘반성 모드’로 선거 콘셉트를 전환했다. 김무성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은 “싸우지 않을게요”라고 노래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런 모습은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8일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찾아 묵념을 하는 대신 무릎을 꿇었다. 그 뒤로 문 전 대표는 더민주 후보들과 함께 호남 지역 곳곳에서 시민들에게 절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야권 분열 사태에 대한 사죄의 의미였다. 문 전 대표는 효과가 미진하다고 느낀 듯 12일 노관규(순천) 후보를 지원할 땐 “정당 투표는 국민의당으로 하시더라도 지역구 투표만큼은 (노 후보에게) 힘을 모아 달라”며 ‘용서’를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일이 가까워지고 판세에 어려움을 느낀 상황에서야 등장한 최경환 의원과 문재인 전 대표의 ‘반성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200만 년 전 원시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퇴화한다는 의미로 네티즌끼리 쓰는 유행어 ‘선거트랄로피테쿠스’의 실체를 확인해서다. 오래된 정치인이나 새 정치인이나 도긴개긴이었다.

더민주의 변화를 주도해 새 바람을 일으킬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야권에 대통령감이 없다”는 말을 가는 곳마다 했다. 하나 선거일을 이틀 앞둔 11일 그의 발언은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우리에겐 문재인·박원순·손학규·안희정·김부겸·이재명 등 기라성 같은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있다.”

최선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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