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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총선 코앞 탈북 뉴스, 북풍의 기억이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1일 오전 10시30분 정부서울청사 3층 브리핑실에서 통일부 정례 브리핑이 열렸다. 평소보다 많은 내외신 기자가 몰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의 진을 뺐다. 이날 오고 간 문답은 무려 64개. 20대 총선을 앞두고 연일 쏟아지는 탈북 관련 소식 때문이다.

질문 고문은 어쩌면 정부가 자초했다. 정 대변인은 지난 8일 오후 5시, 긴급 브리핑 소식을 30분 전에야 공지했다. 해외의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어제(7일) 서울에 도착했다는 발표였다. 통일부는 기자들이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탈북자들의 사진을 제공했다. 이례적인 협조다. 10일엔 통일부와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이 익명 브리핑을 보탰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북제재 이후 북한에는 희망이 없다고 봤다”는 귀순자들의 발언 내용까지 공개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정부는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깼다. 탈북자와 관련해선 신변 보호, 그리고 해당 국가와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탈북 경로 등에 대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유지한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을 깬 데 대한 통일부 정 대변인의 답은 “집단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같이 왔다는 점이 이례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11일 오전 아프리카 주재 북한 외교관 가족, 북한에서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의 대좌(준장과 대령 사이)가 각각 한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그런 사실이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같은 시각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그런 사실이 있지만 인적 사항이나 탈북 경위 등은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지난 8일부터 일사불란하게 탈북과 망명 소식을 전파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야당에선 “청와대 지시로 통일부가 관련 사실을 공개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11일 “과거 보수정권이 선거 때마다 악용했던 북풍(北風)을 또 한 번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청와대 지시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오비이락인 것만은 맞다. 8일은 정부가 독자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한 지 꼭 한 달 되는 날이자 사전투표 첫날이었다.

과거 선거 때마다 북풍 논란은 되풀이돼 왔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당시 대선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국내에 압송돼 파장을 불렀다. 97년 대선에선 당시 청와대 인사들이 중국에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요청한, 이른바 ‘총풍(銃風)’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북풍 효과는 사라졌다. 2000년 16대 총선 직전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했지만 오히려 여당이 패배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북한 뉴스가 안 좋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북풍은 자연풍이어야지 인공바람이면 역풍이 될 수도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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