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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기자에까지 부탁하는 ‘버니’ 젊은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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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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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밤 아이오와주 디모인 시내의 그랜드뷰 대학.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하루 앞둔 마지막 유세장이다. 이미 2000여 명으로 가득 찬 유세장 바깥까지 샌더스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버니’ 지지 피켓을 들고 있던 여성 토니 어너(33)는 “뉴욕에 사는데 일주일 휴가를 내서 왔다”며 “버니가 유일한 대선 후보”라고 단언했다. 토니는 “나는 사회복지사인데 어렵게 사는 분이 정말 많다”며 “공정한 사회, 기회가 균등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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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어너

취재진 출입구로 향하자 어느샌가 어너가 다가와 “당신 일행처럼 꾸며 취재진 출입구로 함께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일반인 출입구는 입장 인원 초과로 이미 봉쇄됐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져 어너를 데리고 취재진 출입구로 들어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어너의 뒤로 ‘버니’ 피켓을 든 장대 같은 장정 5명이 줄줄이 따라왔다. 얼렁뚱땅 유세장 안으로 함께 입장하며 아차 싶었다. “이 친구들이 샌더스 지지자인 것처럼 가장해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어쩌나”라는 후회가 몰려 왔다. 다행히도 이들은 진짜 지지자들이었다. 일행 중 한 청년이 내 팔을 잡은 뒤 연신 “고맙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아이오와 주민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투표권도 없다. 하지만 ‘버니’를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 전날 디모인의 샌더스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닐 살레스-그리핀(28)도 시카고에서 작은 웹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다 잠시 문을 닫고 아이오와로 왔다.

 샌더스 열풍의 동력은 이 같은 젊은 세대의 참여다. 이들이 하는 얘기의 공통점은 “워싱턴 정치는 오염됐고 현실과 멀어졌다”는 분노다.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거부다. 그렇다면 ‘버니’ 환호의 이면엔 워싱턴 정치의 한계가 숨어 있다.

샌더스 열풍은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겼던 미국의 의회정치가 사실은 민심을 모두 품지 못하며 누군가를 정치 바깥으로 밀어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오죽했으면 자칭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민주당 대세였던 클린턴을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이기는 상황까지 왔을까. 샌더스 현상은 트럼프 현상과 더불어 워싱턴 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실례일지 모른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