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보고 싶은 중국, 보아야 할 중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기사 이미지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이 한·중 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동북아 전략 지형을 바꾸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對中) 여론도 싸늘하다. “역대 최상”이라는 주문에 갇혀 보아야 할 중국에 눈감아서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그르치기 마련이다.

 중국을 보는 한국의 시각은 역사가 만들었다. 백영서 연세대(사학과) 교수는 조선말 개혁파에게서 뿌리를 찾았다. ‘낙오자’ ‘개혁 모델’ ‘세력 균형자’ 세 가지 관점이 당시 형성됐다는 논리다. 1894년 중국의 청일전쟁 패전은 전환점이었다. 사대(事大)의 대상이 문명의 낙오자로 추락했다. 중국에 대한 싸늘한 시각은 일제 시대를 거치며 강화됐다. 중국 무시론으로 이어진다. 청 말 개혁운동과 공화혁명을 보며 중국모델론이 등장했다. 청 말 동아시아 3국(한·중·일) 공영론 주창자는 중국을 세력 균형자로 여겼다. 21세기 중국이 굴기(?起)하면서 균형자 관점은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세 관점 모두 중국을 거울 삼아 한국을 바라보는 태도다. 모두 한국이 보고 싶은 중국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한반도를 동반자로 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과 연대할 수 있었던 이유다. 광복과 분단은 중국의 시각도 둘로 갈랐다. 북한은 ‘혈맹’ 한국은 ‘적국’이 됐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다시 보고 싶은 한국을 찾아냈다. 한·중 수교와 한류(韓流)로 이어졌다. 중국에 한국 역시 거울에 비친 자신이었다. 양국 모두 거울을 사이에 놓고 바라봤을 뿐 실체는 관심 밖이었다.

 거울은 북한 핵실험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단 노회(老獪)한 중국은 거울을 국익으로 포장했다. 한·미가 사드를 공식화한 뒤 중국의 한 소장파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중·한 사이에는 여전히 공동 이익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공동 이익은 곧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로,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의 최우선 순위라는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사드는 “중국의 핵심 이익에 심각한 도전”이라고만 언급했다. 거울에 가린 한국의 여론은 외면했다.

 한국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이어갔다. 1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회담 발표문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이 “대북 제재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며 사드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주장하는 대북 ‘끝장 결의’에 대한 완곡한 반대 표시다. 한국 외교부 발표 자료에 이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항상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반도를 다룬다. 한국이나 북한 일방을 편들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사드 이후 대중 외교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여전히 보고 싶은 중국에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