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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납세로 활기 띠는 일본의 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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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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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도쿄총국장

일본 홋카이도의 지자체 가미시호로초(上士幌町)는 전형적인 낙농 지역이다. 인구 5000명에 사육 소가 3만4000두에 이른다. 두 해 전 이곳에 일본 전국에서 기부가 몰려왔다. 5만여 건에 9억7000만 엔(약 99억원)이나 됐다. 연간 세수(6억4000만 엔)를 웃돌았다. 비결은 기부 사례품인 와규(和牛)의 인기다. 기부자는 와규와 농산물·공예품 등 50가지의 특산품을 고를 수 있다. 사례품 가격은 기부액의 약 절반이다. 가미시호로초는 덕분에 올해부터 10년간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을 무료로 했다. 초·중학생용 스쿨버스도 새로 들여왔다. 기노시타 야스아키 담당은 "기부는 주로 인구 감소 대책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쓰나미가 닥친 지는 오래다.

가미시호로초에 대한 기부는 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고향 납세(納稅) 제도의 한 사례다. 중앙정부가 도시·지방 간 세수 격차를 메우기 위해 2008년 도입했다. “태어나 자란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 “응원하고 싶은 지자체를 고를 수 있는 제도”를 표방했다. 누구나 지자체에 기부하면 2000엔을 뺀 전액이 세액 공제된다. 기부 상한액은 거주지에 내는 주민세의 약 20% 선이다. 연간 수입 500만 엔인 회사원으로 부인이 주부일 경우 상한은 5만9000엔이다. 당초 3만 엔이던 것을 지난해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소득이 많을수록 상한도 올라간다.

현재 일본 전체 기초·광역단체 1788곳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80%가량이 사례품을 보내준다. 종류는 5만여 점이 넘는다. 특산물 외에 술·공업제품·전시회 티켓·여행 상품 등 지역의 자랑거리가 망라돼 있다. 사례품 가격은 기부금의 30~50% 수준이라고 한다. 지자체는 홈페이지에 기부 건수와 액수, 사용처를 공개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기부자가 사용처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납세의 원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고향 납세 제도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해는 상반기에만 227만여 건 453억 엔으로 2014년 전체 실적(389억 엔)을 넘어섰다. 시행 첫해 5만여 건 80여억 엔에 비하면 비약적 발전이다. 인지도 상승, 절차 간소화, 사례품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 기부액 2000엔의 효과는 크다. 나눔의 기쁨, 특산물 혜택을 넘어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농수산물 판로를 확보하고, 일자리와 방문객을 늘린 지자체가 한둘이 아니다. 도시와 지방 간에 돈·재화·사람의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 지자체는 시장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기부금 유치를 위해 지혜를 짜내고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 문제도 없지 않다. 도시 지역의 세수 감소와 지자체 간 격차다. 하지만 지방 창생(創生)의 큰 흐름에 비하면 감수할 만한 수준이다.

설을 맞아 일본과 한가지로 인구 감소, 고령화, 재정 적자를 겪고 있는 내 고향을 되살리는 구상을 한번쯤 해보면 어떨까 싶다. 요체는 법제화를 동반한 제도다. 지방 없이 나라 없다.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