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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다툼으로 아까운 시간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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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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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사회부문 기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다툼이 돈 문제로 옮겨붙었다. 교육부는 11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7개 교육청의 예산안을 분석해 “재정 여력이 있는데도 편성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도 교육청은 “정부 분석이 엉터리”라며 교육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튿날인 12일, 교육부는 교육청 주장을 재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공방에 이틀이 걸렸다. 교육부·교육청 모두 기자를 상대로 발표했고, 양측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서야 서로의 주장을 확인했다.

 그러다 보니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도 엇갈린다. 교육부는 경기도교육청이 퇴직자 인건비를 절감하면 530억원의 재원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보통 퇴직자를 신규 직원으로 대체하면 1인당 4000만원 정도 절감 효과가 있는데, 도교육청이 퇴직자 1589명의 절감 효과를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이미 퇴직자 감액분을 반영했다. 명확한 근거도 없는 계산”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반영하지 않은 게 맞다. 인건비를 과다 계상하는 관행을 개선하라”고 재차 반박했다. 또 교육부는 올해 경기도 교원이 늘어나 정원 외 기간제 교원을 줄이면 500억원이 절감된다고 봤다. 반면에 도교육청은 신설 학교 개교로 교원 400명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교원 배치를 효율화해야 한다”고 재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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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문제의 핵심은 교육청에 재정 여력이 있는지 여부가 보육대란을 해결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감들은 돈이 있어도 누리과정이 아닌 꼭 필요한 교육사업에 쓰겠다는데 교육부가 이런 교육감의 태도를 바꿀 순 없다.

 보육대란을 앞두고 경기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다. 누리과정은 현행법에 따르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쓰도록 돼 있다. 교부금은 중앙정부에서 총액을 내려보내면 교육청이 어디에 쓸지 정하고, 지방의회가 이를 승인하는 구조로 돼 있다. 돈은 정부가 주는 게 맞다. 다만 정부가 어디에 쓰라고 교육청을 강제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니 중앙정부·교육청·지방의회 등 3자 중 어느 한쪽만 뜻이 달라도 누리과정은 파행을 맞게 돼 있다.

 교육부가 교육청에 충분한 돈이 있는지 없는지 분석하거나 교육청과 공방을 벌이느라 아까운 시간만 썼다. 이달 25일이 지나면 보육대란은 현실이 된다. 해법은 분명하다. 3자 간 타협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13일 취임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오는 18일 교육감들을 만나겠다고 한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윤서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