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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물의 영장? ‘미지 세계’ 쫓는 게 달라 특별할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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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한국인 고인류학 박사 1호 이상희 교수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이상희 미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인류학과 교수를 만난 것은  ‘한국인 1호 고인류학 박사’란 타이틀에 앞서, 서구 학계의 전유물로 여겨온 인류의 시원(始原)과 존재의 의미를 우리 눈높이에서 이해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고인류학은 방대한 DNA 추적을 통해 인간의 몸 안에 과거 고인류들의 유전자가 존재함을 발견한 학문이다. 이로 인해 현생 인류는 진화의 필연적 결과이며 만물의 영장이란 목적론적 인본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인간에게 새로운 존재론적 성찰의 기회가 열렸지만, 그 한편으로 ‘우리는 동물과 다른 영적 존재’란 믿음이 무너지며 허무주의가 고개를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딜레마에 대한 이 교수의 답은 뭘까.

1999년 한국인으론 첫 고인류학 박사(미국 미시간대)가 된 이 교수는 『인류의 기원』 『인류의 진화』 등의 책과 다큐멘터리 출연으로 고인류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인간 몸안에는 고인류의 유전자
‘인간만 특별하다’는 오만은 금물
저출산, 핵가족 도그마부터 깨야
일반인 눈높이로 고인류학 설명

아버지 별세로 “쉬운 책 쓰자” 결심

이상희 교수는 50여편의 논문을 통해 고인류학의 변방에 있던 노년층과 여성, 아시아 지역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활발한 방송 출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눈높이에서 인류의 시원을 설명해 대중적 인기도 상당하다. [사진 이상희 교수]

이상희 교수는 50여편의 논문을 통해 고인류학의 변방에 있던 노년층과 여성, 아시아 지역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활발한 방송 출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눈높이에서 인류의 시원을 설명해 대중적 인기도 상당하다. [사진 이상희 교수]

알기 쉬운 저서로 ‘고인류학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시는데요.
“2015년 낸 『인류의 기원』은 반응이 좋아 8개 국어로 번역됐고 우수 서적상도 2개 탔습니다. 고인류학을 일반인 눈높이로 쓴 책이 의외로 적어 환영받은 거라 봅니다. (일반인 눈높이로 책 쓴 배경은요?) 1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만 해도 쉽게 읽히는 책은 학자가 쓰기엔 경박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고 저도 그랬어요. 아버지께서 제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며 물어보시면 ‘아빠는 들어도 모를 거야’란 식으로 오만하게 대답했는데, 돌아가시니 황망한 가운데 돌연 ‘쉽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속죄라고 하면 너무 심각하고요.”
한국인들의 고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어떤 수준인가요?
“2010년 과학잡지에 첫 연재를 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제 얘기 정도엔 익숙해진 분들이 늘어났어요. 고인류학은 서구에서도 여유 있는 이들의 학문이란 인상이 강해요. 한국이 어려웠을 땐 눈앞에 닥친 일 외엔 관심 두기 힘들었는데, 인류로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마침 제 책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책 읽고 허무하더라고요. 인간은 25종이 발견된 호모속 인류의 하나일 뿐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로 들렸으니까요.
“저는 생각이 달라요. 인간은 특별하죠. 잘 나서, 만물의 영장이라서 특별하다는 건 아니에요. ‘우월하다, 아니다’는 인류학적으로는 의미 없는 문제죠. 다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기에 특별하다는 거죠.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쉽게 얘기할 수 있는 특징은 두뇌 용량이죠. 차이가 엄청나죠. 또 다른 점은 대부분의 동물은 서식지가 확장하면 종이 분화하는데 사람은 온 지구에 퍼졌는데도 단일 종을 유지해온 점이에요. 호주 선주민은 5만~6만년간 외부와 격리돼 있었지만 19세기 호주에 유입된 유럽인들과 바로 교배가 됐어요. 다른 동물에겐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인간은 동일 종을 유지해왔으니 다른 것이고, 연구 대상인 거죠.”
또 다른 점은 없나요.
“있지요. 인간은 ‘지금 이곳(Now & Here)’을 벗어난 얘기를 좋아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인간 화두의 90% 이상일 걸요. 동물은 눈앞에 보이는 자극에만 반응하지만, 인간은 있지도 않은 걸 걱정하거든요. 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 아닐까 해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조상일까 아닐까’가 우리 삶과 무슨 상관있겠어요. 근데 그런 질문이 인간에겐 중요하거든요. 그게 바로 인간다움이라면, 우리가 망쳐놓은 지구를 다른 생물체들 입장에서 생각하며 깨끗하게 돌려놓는 게 인간다움을 살리는 거라 봅니다.”
수만 년 전 멸종했다는 네안데르탈인이 살아있다면 그들도 인류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갖는가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인류의 몸에도 있으니 그들이 사라졌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조선인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인의 조상이듯이, 네안데르탈인도 혼종을 통해 후손을 남겼으니 수만 년 전 조상인 거죠. 네안데르탈인이 지금 우리랑 지하철을 타고 있다면 또 좀 다른 문제인데요. 보기에 조금 특이하게 생겼지만, 괴물이란 느낌은 없을 거란 말이죠. 인류에게 특유한 게 자아 인식이에요. ‘나는 이 집단에 속해있고 너는 저 집단에 속한 서로 다른 존재’라고 여긴다면 자아 인식을 한다고 보는데요. 그런 인식이 표현되는 게 장신구를 만들어 두르는 거예요.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적에서도 장신구가 발견됐고, 주검을 살아있는 몸과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벽화를 그리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런 행위들이 인간 특유의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네안데르탈인도 인간으로 봐야죠.”

같은 책 놓고 ‘은혜’ ‘사탄’ 엇갈린 반응

호모 사피엔스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면 두 종이 다르다고 단언할 수도 없겠네요.
“그렇죠. 과거엔 호모 사피엔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식으로 한 계통에서 다른 계통으로 계단식 진화를 했다고 믿었잖아요. 교과서에 그런 그림 실린 것 기억나시죠. 그러나 실은 여러 인류 계통이 동시에 존재한 적이 많았어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살 때 유럽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엔 데니소바인이 살았고, 서로 교배한 흔적까지 나온 거죠. 인류의 진화는 계단이 아니라 갈라졌다가 만나고 또 갈라지는, 강줄기에 가까워요.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고인류가 얽힌 결과입니다. 다만 지금은 침팬지만 해도 종이 보노보까지 두 개인데, 호모속엔 사피엔스 외에 다른 종이 남지 않아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게 문제예요.”
이런 얘기 들으면 ‘인간만이 신의 구원을 받는 존재’란 종교의 논리는 설 곳이 없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종교, 이를테면 기독교 입장에선 사람이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냥 사랑하기 때문에 특별한 거잖아요. 저도 딸이 예쁜데, 공부 잘해서가 아니라 딸이니까 예쁜 거예요. 제 책을 ‘사탄의 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책 읽고 인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달았다. 은혜받았다’는 문자를 목사님들로부터 많이 받기도 했어요. 그걸 읽으면서 ‘이게 종교가 과학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 생각했죠. 삶에서 의미를 찾게 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게 종교예요. 어떤 분이 어떤 책을 읽고서 은혜를 느끼는 것도 종교 때문인 것처럼요. 인간이 동물과 어떻게 다르냐는 건 인류학의 흥미 있는 주제지만, 그게 인간의 가치를 올리거나 내리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고인류학 입장에서 저출산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요.
“제가 극찬한 책 중에 루시 쿡이라는 작가가 쓴 『암컷들』이 있어요. 책에 따르면 암컷의 임신과 출산은 환경에서 나오는 신호와 연결된 반응입니다. 인간 여성의 저출산도 출산·육아에 좋은 환경이 아니란 신호에 따른 선택의 결과예요. 따라서 저출산 해결책은 ‘낳으면 돈 줄게’ 대신 출산·육아에 좋은 환경이란 신호가 나오도록 사회를 바꾸는 겁니다.”

한반도 인류 화석이 한민족? 중대 착각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출산과 육아를 핵가족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선동이 문제의 근본이죠. 그 틀에서 여성의 육아 ‘독박’을 당연한 윤리라고 입력하고, 독박 육아를 하며 애쓰는 여성은 ‘맘충’이라 혐오하니 말이에요. 인류 역사상 ‘핵가족’은 실재한 적이 없어요. 정치적 선언일 뿐이죠. 인간은 출산부터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산도보다 태아 머리가 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서 인류 역사를 보면 출산도 육아도 공동체가 함께 했어요. 그렇게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저출산 문제를 풀 수 있을 겁니다.”
저출산이 세계적 현상이다 보니 인류 멸종의 전주곡이란 얘기도 있는데요.
“종의 운명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어요. 사라지거나 2개 종으로 분화해요. 순전히 상상인데, 저출산이 언젠가는 바닥을 치고 어느 정도 현상을 유지하지 않을까 합니다. 고령자도 아이를 낳는 등 실험적 출산이 시도되기 있기 때문인데요. 호모 에렉투스는 100만년 넘게 살았는데 인류는 아직 10만여년밖에 안 살았거든요.”
한국인은 유달리 핏줄이나 민족의식이 강한데요.
“국격은 높아졌지만, 여성이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배타의식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우리가 한반도 한곳에서 살기 시작한 건  1만년도 안 됐어요. 즉 한반도에서 몇만년 전 화석이 나왔다고 그가 한반도인은 아닌 거예요. 고인류의 이동·서식 경로를 연구하면 민족 단위 사고가 얼마나 편협한지 알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살던 고인류는 ‘한민족’이 아니라 ‘인류’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면 더 겸손해지고,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