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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대치동, 저출산은 당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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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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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디지털데이터 분석가 글에 “구글의 검색창에 ‘엄마처럼’을 써넣으면 연관어로 ‘살기 싫다’가 뜹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정말 그런지 해봤다. 엄마처럼, 네 글자를 입력하니 창에 여러 연관검색어가 떴다. 맨 위에 있는 것이 ‘엄마처럼 살지 마’였다. 살기 싫다가 살지 마가 된 것은 검색 시차 때문일 수 있다.

내친김에 ‘부모처럼’을 넣어봤다. 연관어가 딱 하나 떴는데, ‘부모가 처음이라’였다. 그것을 선택하자 부모 노릇 하기가 힘들다는 새내기 엄마·아빠의 하소연이 잔뜩 있었다. 그다음에는 ‘아빠처럼’을 자판에 두드렸다. 맨 위 연관 검색어가 ‘아빠처럼 챙겨주는 남자’였다. 아빠처럼 세심히 보살펴주고, 이해하고, 항상 내 편이 돼주는 남자친구를 바란다는 글이 다수였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딸바보’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여성이 많음을 보여줬다.

‘엄마처럼’ 연관검색어 ‘살지 마’
‘미친 경쟁’ 대물림 기피는 본능
고위직에 필요한 학원가 밤마실

구글 검색 세 번에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엄마는 딸이 자신처럼 독박육아, 경력단절, 경제적 압박을 겪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것 자유롭게 하며 살기를 희망하고, 딸들은 적어도 아빠만큼은 가정에 헌신적일 것 같은 남성을 짝으로 찾고 있으며, 젊은 부부는 부담스러운 숙제들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교제, 결혼, 출산이 두려운 세상. 21세기 초반의 한국은 이 자화상을 디지털 화석으로 남기고 있다.

“지금의 세대,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한 문장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아서’다.” 책 『200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 작가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의 20대에겐 초합리, 초개인, 초자율의 3대 특징이 있다고 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선 자녀 출산이 젊은층의 세계관과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인간의 첫째 본능이 생존이고, 둘째가 재생산이라고 말한다. 생활에 필요한 자원에 대한 경쟁과 투쟁이 치열해지면 생존 본능이 앞서게 되고, 그 결과로 출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초저출산은 왜 생겼을까?』). 그는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내가 살 것인가 가운데 전자를 택하면 출산으로 이어지고, 후자를 우선시하면 출산을 미루게 된다. 압축적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우, 물리적인 경쟁뿐 아니라 심리적인 경쟁이 저출산 요인으로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며칠 전 오후 10시쯤 서울 대치역 네거리에 갔다. 그 동네 주민인 언론계 선배와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치맥’을 했다. 도로 끝 차로는 학원에서 나오는 자녀를 픽업하려고 부모가 몰고 온 차량이 점령하고 있었고, 인도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거나 끄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학원가 ‘피크 타임’ 목격은 오랜만이었다. 그 시간 서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 분명 대치역 주변일 것이다. 네거리 모퉁이의 편의점에 들렀는데, 계산대 앞에 줄 선 학생들 때문에 5분가량 머물렀다. 학생들 대화를 들어 보니 뭘 좀 먹고 집에 가려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학원으로 가거나 스터디 카페로 향하는 길에 학교 매점 가듯 온 것이었다. 밤 10시에 다시 공부하러 집이 아닌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학생들, 얼굴에 활기가 없었다.

청년들이 밤에 불을 밝히고 공부하면 나라 장래가 희망적이어야 하는데, 그날 대치동 모습은 절망적이다. 지금의 2030세대는 학원 뺑뺑이를 지겹게 체험했고, 지금 10대는 그것을 관통 중이다. 부모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아이는 학원가 좀비가 된다. 이를 보고 겪은 젊은이의 출산 망설임, 포기는 당연하다. 저출산을 담당하는 장관과 대통령 비서관이 생긴다고 한다. 출산지원금 1억원 얘기도 계속된다. ‘미친 경쟁’이 대폭 줄거나 사라지지 않는 한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날 대치동에서 했다. 저출산 정책을 관장하는 분들에게 학원가 밤마실을 권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