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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처럼 투자상품 고른다,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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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직장인 A씨는 최근 온라인 기반 자산관리 전문업체와 투자자문 계약을 맺었다. 1만원 안팎의 월정액을 내면 소득과 직업·가족관계·투자 성향뿐 아니라 소비수준과 기존 자산 현황 등을 감안해 자동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해주는 서비스다. 일명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자산관리 자동화 서비스)’다. 독립 회사라 특정 회사나 상품에 치우칠 염려도 없었다. A씨는 자문 서비스를 받아본 뒤 만족하면 투자 일임 계약도 맺을 생각이다. 추천받은 대로 바로 투자하겠단 거다. 투자 일임 서비스는 수천만원에서 1억원대의 최소 가입 조건이 있는 게 보통이지만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수백만원부터 투자할 수 있다. 1%가 넘는 수수료에 추가 성공보수까지 내야 하는 기존 서비스와 달리 투자금의 0.5% 수준의 수수료만 내면 된다.

반퇴세대, 금융 IQ 높여라 <중> 반퇴상품이 없다

자산관리, 중산층으로 확대
소득·자산·성향 입력만 하면
맞춤 상품 실시간으로 추천

온라인 기반 상담 수수료 낮춰
가입 금액도 수백만원으로
고액 자산가 위주에서 탈피

 A씨가 미국인이라면 현실이고, 한국인이라면 가상현실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중산층의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한 갈증은 심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상품은 국내엔 드물다. 국내 증권사에서도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랩어카운트’처럼 주력 상품 대부분은 수천만원에서 1억원대에 달하는 최소 가입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장 상황에 상관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역시 1억원 이상 투자해야 가입할 수 있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랩어카운트 상품을 추천받았지만 3000만원이란 최소 가입 기준 때문에 가입을 망설이고 있는 직장인 최모(38)씨는 “금리 1% 시대에 은행만 믿고 있을 수도 없고 증권사 상품은 문턱이 너무 높고, 투자할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에 유독 중산층을 위한 금융상품이 부족한 데엔 이유가 있다. 아직도 증권사가 일명 ‘브로커리지’라 불리는 주식매매 중개 수수료에 매달리고 있어서다. 몇 년 전부터 거래대금이 줄어 브로커리지 사업 수익이 급감하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증권사 매출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수익 기반이 수수료다 보니 푼돈을 맡기는 일반 고객보다 한 번에 큰 액수를 맡기는 자산가 위주로 금융 서비스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증권사 등 미국 업계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자산관리 시장의 저변 확대에 나섰다. 고액 자산가 중심이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중 부유층(Mass affluent)’이라 불리는 중산층으로까지 확대한 온라인 자산관리업이 대표적이다. 2010년 시작된 BOA메릴린치의 ‘메릴에지’가 선두주자다. 메릴에지는 투자자산이 5만~25만 달러(약 5800만~2억9000만원) 수준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정액 수수료 혹은 0.15~0.5% 수준의 낮은 수수료를 받고 온라인 기반의 투자 자문과 일임 운용을 해준다. 서영미 금융투자협회 연구원은 “지점 기반의 오프라인 서비스를 온라인화하고 프라이빗뱅커(PB) 중심에서 콜센터 상담사 중심으로 바꿔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서비스 대상을 확 넓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는 고객의 소득이나 투자 성향 등을 파악해 거기에 적합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제공하고 실시간으로 자산을 조정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로 확대됐다. 2011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웰스프런트가 대표적인 서비스 회사다.

 국내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서비스가 태동하고 있다. 대우증권은 내년 1월 서비스 시작을 목표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를 모은 온라인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오인대 대우증권 팀장은 “일반적인 자문사의 자문 및 일임 서비스는 최소 가입 금액이 수천만원은 돼야 하지만 이 서비스는 500만원부터 가입 가능하다”며 “온라인 기반으로 수수료도 대폭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카카오증권’으로 유명한 두나무도 두나무투자일임을 세우고 ‘온라인 투자자문사 수퍼마켓’을 준비 중이다. 고액 자산가만 접근 가능했던 투자자문사의 대표 상품을 펀드 수퍼마켓처럼 온라인에서 가입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는 이런 서비스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 국내 투자자는 기대수익률이 너무 높아 저비용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퇴세대, 금융 IQ 높여라’ 자문단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 문진혁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 세무팀장,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가나다순)

◆특별취재팀=조민근·박진석·강병철·염지현·이태경·김경진·정선언·이승호 기자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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