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실패 땐 가족 봐주게” 5·16 명단서 내 이름 뺐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25

육본 감시 받던 박정희

1959년 육군 대령 시절 미국으로 한달간 연수를 떠날 때의 모습. 가운데 악수하는 미군 장성 옆에 가방을 든 사람이 당시 연수단장을 맡았던 필자다. 사진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1959년 육군 대령 시절 미국으로 한달간 연수를 떠날 때의 모습. 가운데 악수하는 미군 장성 옆에 가방을 든 사람이 당시 연수단장을 맡았던 필자다. 사진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새로운 국가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던 박정희 장군. 그의 부름에 곧장 응했던 필자. 거기에다 ‘요주의 인물’이었던 김종필 등이 드나들던 부산에 당시 육본에 있던 서종철 장군이 직접 감찰을 내려오기도 했다.
25사단에서 모신 적이 있었던 내가 마중 나가 술대접을 맡았다.

“뭐 한다는 보고가 많아. 진짜 뭐 하는 거 아니야?”
“모여서 술이나 먹고 분통이나 터뜨리는 거지. 뭘 하겠습니까?”

그 후 4·19혁명이 터지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다. 하지만 육본은 여전히 부산을 주시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박 사령관을 광주로 이동시켰다. 떠나는 박 사령관은 내 경력 관리를 염려해 주었다. 최소한 6개월은 근무해야 경력이 인정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