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자네 무쇳덩어리야?” 술자리 버틴 박태준에 놀랐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18

대통령과도 격론 벌이며 만든 제철소

1967년 개천절에 열린 포철 기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는 11월 8일 종합제철소 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에 공식 임명되었다. 그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나를 불렀다.

“산업화를 성공시키려면 고속도로와 제철소는 필수야.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책임질 테니 자네는 제철소를 맡게. 제철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그러나 임자는 할 수 있어.”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 나에게 보내준 격려였다. 실제로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박 대통령은 온갖 반대와 비난을 무릅쓰고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켰고, 나는 1973년에 포철 1기 공사를 완성했던 것이다. 포철 1기 공사에 투입된 자금이 경부고속도로보다 3배가 많았으니 포철 대역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엔 정치판이 시끄러웠다. 선거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극한적 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12월엔 이른바 ‘동백림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서독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비틀어 놓았다. 서독은 KISA(대한 국제제철 차관단)의 주요 멤버였던 만큼 포철의 외자 도입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1968년 1월엔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터졌다. 북한 124군부대 31명의 청와대 기습 사건이 그것이다. ‘김신조’란 개인의 이름을 국민의 뇌리에 새기게 만든 이 비극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다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발발했다. 모든 국민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지만, 나는 포철 건설의 책무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기억이 남는다.

첫째는 회사 이름. 세 가지 안이 나왔다. 고려종합제철·한국종합제철·포항종합제철을 놓고 선택은 대통령에게 맡겼다. “이름을 거창하게 짓는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야.” 실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마지막 것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