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회사 임원에 “엎드려뻗쳐”…난 ‘포항 미치광이’ 자처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11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박태준 회고록’ 디지털 에디션을 시작합니다

중앙일보의 인물 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2004년 8월부터 12월까지 90회에 걸쳐 박태준(1927~2011) 전 포스코 명예회장(32대 국무총리)의 현대사 증언을 연재했습니다. 박 전 회장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인 포항제철을 모래밭에서 일궈낸 세계적 ‘철강왕’이었습니다.

지난 회까지는 군인에서 기업가가 된 박태준이 왜 박정희의 정계 진출 권유도 마다하다가 1980년 이후 정치판에 뛰어들었는지, 그리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5명의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과정과 그의 술회를 담았습니다. 이번 회부터는 본격적으로 ‘철강제국’ 건설의 대역사(大役事)를 다룹니다.

‘모래밭의 기동전’ 포항제철 건설

1968년 11월 포항제철 건설현장 사무소(롬멜하우스)로 현지 시찰을 온 박정희 대통령(앞줄 맨 오른쪽)을 안내하는 필자(앞줄 오른쪽 둘째 점퍼 차림). 박 대통령은 허허벌판을 보며 ″박 사장, 이거 어디 되겠나″라며 걱정했다. 중앙포토

1968년 11월 포항제철 건설현장 사무소(롬멜하우스)로 현지 시찰을 온 박정희 대통령(앞줄 맨 오른쪽)을 안내하는 필자(앞줄 오른쪽 둘째 점퍼 차림). 박 대통령은 허허벌판을 보며 ″박 사장, 이거 어디 되겠나″라며 걱정했다. 중앙포토

모두 우향우!

1968년 6월 15일 새벽 4시. 비상소집된 포항제철 건설요원들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막 솟아오르고, 현장 건설사무소 오른쪽 아래로는 영일만의 짙푸른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요.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모두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오.”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포항 모래 벌판에 종합제철소를 세운다는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일을 그르칠 경우 전부 오른쪽에 보이는 영일만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를 ‘우향우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로 현장사무소를 ‘롬멜하우스’라고 이름 지었다. 롬멜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막의 전차 기동전을 이끌었던 독일의 장군이다.

그해 4월 1일, 고작 39명의 건설요원과 함께 포항으로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집사람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생각해 주시오.”

나는 실제로 죽음까지 각오하고 덤볐다. 종합제철 완공 때까지 줄곧 포항 효자동 사택에서 독신 생활을 하는 바람에 나에게는 ‘효자사 주지’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당시 현장 풍경을 포항제철 30년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바닷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모래가 휘날려 모래 안경을 써야 했다. 입·코·귀에 모래가 들어가 서걱서걱해서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까지도 ‘안 될 일’이라고 등을 돌린 제철소였다.

그해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처음으로 포항 현장에 내려왔다. 모래바람에 눈을 비비면서 허허벌판을 직접 본 박 대통령은 혀를 찼다.

여보게 박 사장, 이거 어디 되겠나?

나를 믿고 내려보냈고, 언제나 자신에 차 있던 그의 한숨에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