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100억 준대도 못 샀다…김환기 ‘우주’와 어긋난 인연

  • 카드 발행 일시2024.05.02

1938년 그린 이 그림은 등록문화재가 됐습니다.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곡을 뜻하는 ‘론도’라는 제목처럼 완만한 곡선과 색분할로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피아노 4중주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이제는 한국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의 주인공이 돼버렸죠. ‘론도’는 김환기(1913~74)의 시작,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입니다.

 김환기, 론도, 1938, 캔버스에 유채, 60.7x72.6㎝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론도, 1938, 캔버스에 유채, 60.7x72.6㎝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마치 음악이 들리는 듯한 ‘론도’에서 시작해 달항아리 영롱한 반추상 회화를 거쳐 화면 전체가 점점이 아롱진 만년의 전면 점화까지. 61세 짧은 생애, 김환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랐던” 그의 삶과 그림을 따라가 봅니다.

지난 설문에서 많은 독자분이 “김환기의 생애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시기별로 달라진 화풍이 궁금하다” “지난해 호암미술관 회고전에 나온 많은 작품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15회, 넉 달간 이어진 연재의 마지막 주인공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입니다. 그동안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벽화의 운명, ‘우주’의 운명 

벽화 완출(完出)! 나대로의 그림 그대로 밀고 가자 (1960년 1월 25일)

폭 6m 대작을 완성한 날, 마흔일곱 화가가 수첩에 적은 한 줄이다. 김환기의 유일한 벽화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다. 과정이 지난했기에 완성의 희열은 더 컸다. “11시에서 17시30분까지 달걀 두 개 먹고 제작”한 날도, “어제도 오늘도 제작. 죽어버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홍대 교수 시절이었다.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60, 캔버스에 유채, 281.5x567㎝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60, 캔버스에 유채, 281.5x567㎝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여인들이 인 달항아리도, 드러낸 가슴도, 얼굴도, 입술도 동그랗다. 꽃과 새를 파는 아가씨는 무릎을 세운 채 쪼그려 앉았다. 항아리와 여인과 나무와 숭례문부터 지그시 눈 감은 사슴까지, 좋아하는 것들은 다 그렸다. 조각보처럼 가른 연회색·연분홍 배경이 따뜻하다. 서명 없이도 분명한 김환기 그림이다.

지난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한 점 하늘_김환기'에 출품된 '여인들과 항아리'. 그림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뉴스1

지난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한 점 하늘_김환기'에 출품된 '여인들과 항아리'. 그림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뉴스1

벽화는 삼호방직 정재호 회장이 서울 필동에 자택을 신축하면서 주문했다. 그 집 1층과 2층 난간 사이 벽에 20년 넘게 걸렸다. 삼호방직은 대전방직·조선방직을 불하받아 자유당 시절 최대의 방직 재벌이 됐다. 그러나 정재호는 1973년 박정희 정권의 반사회적 기업 명단에 포함되면서 몰락한다. 기업자금을 빼돌려 사채놀이했다는 거였다.

글 싣는 순서

1. 벽화의 운명, ‘우주’의 운명 (읽는시간 100초)
2. 점화의 탄생 (여기까지 180초)
3.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280초)
🎨남은 이야기. “그 그림 안 팝니다”… 가장 비싼 한국 미술품 Top10 (320초)

회사가 기울면서 벽화도 매물로 나왔다. 1980년대 초, 4억원 넘는 가격에 이건희 회장이 인수한다. 당시 거래를 중개한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은 “작품의 규모와 내용이 뛰어나 이 회장은 사진만 보고도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