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파리서 직접 골랐다…아들 셋 뺏긴 ‘엄마의 그리움’

  • 카드 발행 일시2024.04.18

저는 지금 베니스에 와 있습니다. 2년에 한 번 ‘세계 미술의 최첨단’이 모여드는 곳, 베니스 비엔날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입니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를 여는 이성자(1918~2009)도 그랬습니다.

1950년대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 시절의 이성자. 고갱ㆍ모딜리아니ㆍ미로가 거쳐간 미술학교다. 사진 이성자기념사업회

1950년대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 시절의 이성자. 고갱ㆍ모딜리아니ㆍ미로가 거쳐간 미술학교다. 사진 이성자기념사업회

이혼하고 세 아들과 헤어지면서 고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스스로를 ‘추방’했습니다. 그렇게 건너가 화가로 다시 태어난 파리에서도 한국 출신 예술가들로부터 소외됐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이 시기 파리에서 활동한 그 어느 한국 화가보다도 밝고 따뜻합니다. 이성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나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불란서 사람도 아니고 이성자라는…앙디비주엘르(개인)”라고 했었죠. “어디서 죽고 싶냐”는 누군가의 질문엔 “비행기 안”이라고 답했습니다. 평생 이방인·외국인으로 살았던 ‘경계 없는 무국적자 이성자’가 지금 잠시 베니스에 머물고 있습니다.

# 68년 만에 다시 온 베니스…‘지구 저편으로’

베니스의 석호 사이 좁은 골목길을 헤맬 여행자들은 복잡한 현대 미술의 아우성 속에 또 한 번 길을 잃을 것이다. 20일 개막해 11월 24일까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7개월여 동안 그렇다. 비엔날레 한복판의 신생 전시공간 아르테노바에서 열리는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는 범람하는 현대 미술 속에 부표처럼 떠 있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에 출품된 그의 대표작들. 왼쪽부터 '오작교''신부''내가 아는 어머니'. 베니스= 권근영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에 출품된 그의 대표작들. 왼쪽부터 '오작교''신부''내가 아는 어머니'. 베니스= 권근영 기자

이성자기념사업회ㆍ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ㆍ갤러리현대가 꾸린 이 회고전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30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기획은 바르토메우 마리. ‘한국 미술의 세계화’ 임무를 받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외국인 관장으로 일한 그가 이성자의 전 시기를 망라하는 20점을 엄선했다. 마리 전 관장은 “이성자의 삶은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와 조응하며, 그의 예술은 우리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물ㆍ대지ㆍ공기ㆍ식물 등과 함께 살아가는 우주의 일원임을 일찌감치 말해왔다는 점에서도 오늘날 세계 미술의 화두와 조응한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 68년 만에 다시 온 베니스…‘지구 저편으로’ (읽는 시간 36초)
# 1980년대 홍라희가 파리에서 골라 온 ‘천년의 고가’ (여기까지 160초)
# “비행기 안에서 죽고 싶다”던 영원한 이방인 (210초)
🌠남은 이야기: 떠난 어머니가 편지도 안 한 까닭은 (320초)

이성자의 베니스 방문은 68년 만이다. 파리에서 패션 학교를 다니다 학교 선생의 권유로 처음 그림을 배운 게 35세. 3년 뒤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 처음 그림 판 돈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베니스와 함께 카라라ㆍ피렌체 등지를 돌았다. 1956년의 일이다. 경남 진주에서 베니스까지, 멈추지 않고 늘 ‘지구 저편으로’ 갔던 그의 인생 유전(流轉)을 따라가 보자.

# 1980년대 홍라희가 파리에서 골라 온 ‘천년의 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