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와 누드의 ‘파격적 만남’…도상봉·나상윤 사랑이 이랬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11

‘라일락 화가’라 불렸습니다. 마당에 핀 라일락을 꺾어다 백자에 꽂고 이 장면을 화폭에 담았던 도상봉(1902~77)입니다. 20세기 초 화가들 사이에 널리 퍼진 백자붐의 원조였습니다. 11살 어린 후배 김환기도 새 백자를 구하면 그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다죠. 도상봉의 백자도, 이를 닮은 고상한 정물화·풍경화도 모두 이건희컬렉션으로 남았습니다.

이건희ㆍ홍라희 마스터피스

도상봉, 라일락, 1959, 캔버스에 유채, 50.3x60.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도상봉, 라일락, 1959, 캔버스에 유채, 50.3x60.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지난달 ‘마스터피스’가 마련한 이벤트에 참여한 독자분들께서 시리즈 중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로 이중섭, 그리고 백남순의 기막힌 사랑을 꼽아주셨습니다. 이번엔 도상봉-나상윤 부부입니다. 일제강점기 자유연애로 결혼에 골인하고, 또 함께 미술 유학을 했던 부부 화가의 이야기가 꼭 비극으로만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예술과 생활의 일치를 꿈꾼 근대의 보헤미안, 도상봉 이야기를 보시죠.

도상봉, 정물, 1974, 캔버스에 유채, 24.5x33.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도상봉, 정물, 1974, 캔버스에 유채, 24.5x33.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포도송이 그려진 청화 항아리, 이건희컬렉션의 그 백자  

도자기를 너무도 좋아해 호도 ‘도천(陶泉)’, 도자기의 샘이라 지었다. 네 살 아래인 간송 전형필과 함께 손꼽히는 백자 컬렉터였다. 도상봉은 아침저녁 바뀌는 백자의 색깔을 지켜봤고, 이지러진 달항아리에서도, 갈라진 표면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았다.

글 싣는 순서

# 포도송이 그려진 청화 항아리, 이건희컬렉션의 그 백자 (읽는 시간 70초)
# “보지 않는 건 그리지 않는다” (여기까지 110초)
# ‘영롱히 그린 화폭 같은 스위트홈 생활’ (180초)
💐남은 이야기: “할아버지 그림 보면 세상과 화해하는 느낌” (220초)

일본으로 도자기가 유출되는 게 안타까워 1933년에는 아예 도자기 가게를 차렸다. 좋은 것이 들어오면 본인이 사들였다. 수집한 도자기 300점으로 ‘이조도자전’도 열었다. 후에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백자 선생이 된 홍기대(1921~2019) 구하산방 대표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늘 붙어 다닐 정도로 가까웠던 도상봉과 김환기는 새로운 물건이 오면 먼저 보고 가져가겠다는 욕심에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오가곤 했다. 특히 도천은 사흘이 멀다 하고 만났다. 함경남도 흥원의 갑부집 아들인 도천은 일본에 유학했을 때부터 도자기를 모았는데 도자기 가운데 청자는 싫다며 백자만을 모았다.(『우당 홍기대, 조선백자와 80년』)

도상봉이 간직했던 ‘청화백자 포도무늬 항아리’(높이 18.3㎝).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컬렉션

도상봉이 간직했던 ‘청화백자 포도무늬 항아리’(높이 18.3㎝).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컬렉션

전쟁이 나자 고향으로 옮긴 도상봉의 백자들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서울서 모은 것들은 후에 미술협회 이사장을 하면서 홍기대를 통해 정리했다. 일부는 김환기가 가져갔지만, 그가 미국으로 가면서 다시 흩어졌다. 홍기대는 생전에 “삼성에 있는 백자 청화 포도문 항아리도 도상봉이 가지고 있던 것”이라며 “청화 항아리에 포도 넝쿨이 그려진 것은 몇 점 있지만 이렇게 포도송이까지 그려진 것은 유일하다”고 했다. 이 포도무늬 항아리는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도상봉(왼쪽)과 김환기. 사진 도윤희

도상봉(왼쪽)과 김환기. 사진 도윤희

20세기 화가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진 백자 사랑, 그 앞머리에 도상봉이 있었다. 11살 아래 김환기도 따랐다. 김환기가 항아리와 여인의 면 분할로부터 분청사기 인화문을 닮은 점묘 추상으로 갔다면, 도상봉은 백자의 영롱함을 화폭에 살리는 데 평생을 걸었다. “사진 모양으로 똑같아서야 요술이지 예술입니까”(1967년 중앙일보 인터뷰)라던 그다. 붓으로 점점이 다독거려 나간 화면에는 일정한 붓질이 만들어낸 은은한 기운이 남았다. 그의 그림에서 백자는 소재이자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