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는 무려 150억 썼다, 숨겨졌던 한국 최고가 그림

  • 카드 발행 일시2024.04.04

여기 한 화가의 이력서가 있습니다. 노트에 직접 꾹꾹 눌러 적었습니다. ‘1929년 3월 양구 공립보통학교를 졸업 후 미술공부(독학)’로 시작합니다. 남들 다 가던 일본 유학도, 유명한 스승 이름도 없습니다. 아홉 번의 조선 미술전람회 출품, 해방 후 국전 특선 등 공모전 출품 이력만 죽 적었습니다. 학연도, 지연도 없는 그가 화가가 되려면 그 길뿐이었으니까요. “밀레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던 그는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가난한 이웃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네, 박수근(1914~65)입니다.

이건희ㆍ홍라희 마스터피스

박수근의 자필 이력서, 1963, 유족 소장. 사진 권근영

박수근의 자필 이력서, 1963, 유족 소장. 사진 권근영

한국 미술품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뭘까요?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수수료 미포함)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1971)라고요?맞습니다. 경매라는 공개 시장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더 비싼 가격에 팔린 작품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미술의 최고가 작품은 바로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1962)입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1~2세기 뒤 문화재를 지정한다면 바로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그리고 ‘절구질하는 여인’일 것”이라고 꼽은 적이 있습니다. ‘나무와 두 여인’은 리움미술관에, ‘절구질하는 여인’은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습니다. 두 점 다 박수근의 보기 드문 대작입니다. 이번 주 마스터피스는 바로 이 박수근의 ‘국보’ 얘기입니다. 서울대 미술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미술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권근영 기자가 풀어갑니다.

# 박완서가 데뷔작 ‘나목’에서 말한 ‘봄을 기다리는 나무’

박완서(1931~2011)는 자전소설 ‘나목’(1970)으로 마흔에 데뷔했다.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그가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1965년 박수근의 부고를 접한 뒤. 전쟁 중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했던 두 사람이다. 절망의 시대 한 줄기 희망이 돼 줬던 그에 대해 박완서는 뭐라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화가가 죽자, 소설가가 태어났다.

글 싣는 순서

# 박완서가 데뷔작 ‘나목’에서 말한 ‘봄을 기다리는 나무’ (읽는 시간 50초)

# 유홍준이 ‘국보’로 꼽은 ‘절구질하는 여인’… “이재용이 기증하라 했다” (여기까지 90초)

# 일본·미국 거쳐 돌아온 가장 큰 그림 ‘농악’ (140초)

🐟남은 이야기: 결혼선물로 받은 ‘굴비’, 만 배 오른 값에 되사들여 기증 (17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