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남편 70년 그리워하다…사랑꾼 이중섭 ‘구애 엽서화’

  • 카드 발행 일시2024.02.22

47억원. 201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팔린 이중섭(1916~56)의 그림 ‘소’의 가격입니다. 그는 김환기에 이어 ‘한국에서 그림값 가장 비싼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불행했던 예술가’로도 불리죠. 가족과 떨어져 살며, 그림만 그리고 또 그리다가, 행려병자로 마흔 살 짧은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중섭이 ‘한국의 반 고흐’로도 불리는 이유입니다.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개성 있는 스타일을 구축한 데다 이런 ‘스토리’까지 더해지며, 이중섭은 가장 널리 사랑받는 ‘국민 화가’가 됐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만 황소·흰소 등 총 104점이 기증됐습니다. 유영국·피카소 다음으로 많습니다. 판화 위주인 유영국, 도자기 컬렉션인 피카소와 달리 유화·은지화·엽서화·편지화 등 이중섭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고루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더 눈길을 끄는 건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 기증된 그림들입니다. ‘배고팠지만 행복했던’ 이중섭의 제주 피란 11개월을 기려 만든 이 작은 미술관에도 이건희 컬렉션 12점이 갔습니다. 대부분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과 관련된 그림들입니다. 이번 주 ‘마스터피스’는 서귀포로 갑니다.

비가 내린 21일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 주거지에 목련이 피었다. 서귀포=연합뉴스

비가 내린 21일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 주거지에 목련이 피었다. 서귀포=연합뉴스

이중섭, 가족과 첫눈, 1950년대, 종이애 유채, 32x49.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가족과 첫눈, 1950년대, 종이애 유채, 32x49.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벌거벗은 아이들과 남녀, 그리고 새와 물고기가 한데 뒤엉켜 있다. 이중섭 그림의 단골 주인공들이다. 서로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인물들의 팔다리, 활짝 편 새의 날개, 물고기의 비늘까지, 이중섭은 쓱쓱 그은 듯한 붓질만으로 살려냈다. 여느 이중섭 그림과 다른 점은 배경에 툭툭 찍은 흰 물감. 그의 그림 속 배경은 대개 남국의 해변이나 무릉도원처럼 따뜻한 어딘가인데, 이 그림 ‘가족과 첫눈’에서만큼은 눈이 펑펑 쏟아진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매우 춥고 눈이 내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항구에서 서귀포 교회까지 가는 데 수일이 걸렸습니다. 배급받은 식량이 떨어지면 농가를 찾아가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고, 마구간 같은 곳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아고리(이중섭을 부르는 애칭)와 둘이서 ‘우리 꼭 예수 같네’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

고달팠을 그때를 동화처럼 기억해 내는 아내처럼, 남편의 그림도 환상적이다. 김인혜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관은 "1955년 서울 미도파 화랑 리플렛의 출품작 목록에 ‘피란민과 첫눈’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눈 내리는 정경을 그린 게 드물어서 이 그림이 아닐까 추정된다. 유학 시절 일본에서 ‘초현실주의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중섭의 1950년대 초반작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