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방에 오래 걸려 있었다, ‘심플’ 장욱진의 낯선 이 그림

  • 카드 발행 일시2024.02.08
270여 점, 역대 최대 규모의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이 12일 막을 내린다. 전시작 ‘나무’(1986)를 관람객이 휴대폰에 담고 있다. 뉴시스

270여 점, 역대 최대 규모의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이 12일 막을 내린다. 전시작 ‘나무’(1986)를 관람객이 휴대폰에 담고 있다. 뉴시스

23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개막한 지 140일이 넘어서 볼 사람은 다 봤겠다 싶은데, 또 보고 싶어 온답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얘기입니다. 폐막을 나흘 앞둔 지금도 하루 평균 1900명 가까이 찾아와 전시장은 늘 북적입니다.

‘공기놀이’ ‘소녀’ 등 전시장 들머리의 초기작은 2021년 이건희 삼성 회장 사후 기증품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488점 중 작가별로는 장욱진의 그림이 69점으로 유영국·이중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증작 중 26점, 리움미술관과 이 회장 유족들이 빌려준 1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의 장욱진 회고전을 얘기할 때 이건희 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마스터피스’는 설을 맞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기사에 댓글을 달아 주시는 독자 다섯 분께 최근 출간된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사진)을 보내드립니다. 장욱진 그림과 함께 행복한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장욱진, ‘공기놀이’, 1938, 캔버스에 유채, 65x80.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장욱진, ‘공기놀이’, 1938, 캔버스에 유채, 65x80.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어린 시절 아들 방에 오래 걸어뒀던 그림이에요.

이건희 컬렉션의 첫 전시 ‘한국미술명작’을 보러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이 그림 앞에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한다. ‘공기놀이’ 얘기다. 다가가 화가의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장욱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평생 까치와 나무와 가족을 공책만 한 화폭에 담으며 “작은 것들을 친절하게 봐주라”던 장욱진이다. 언제 이런 낯선 그림을 그린 걸까?

지금 5학년인데 졸업을 하고는 미술학교로 가겠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할 바가 있을 줄 압니다.

1938년 장욱진(1917~90)이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 중등부에서 특선, 그중에서도 최고상에 꼽혔을 때 양정중 미술부 지도교사가 신문에 한 인터뷰다. 86년 뒤, 제자가 이렇게 사랑받는 화가가 될 줄 스승은 짐작이나 했을까. ‘공기놀이’는 이때의 수상작이다.

‘공기놀이’가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권근영 기자

‘공기놀이’가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권근영 기자

흰 저고리와 행주치마에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하늘색·분홍색 치맛자락을 추스른 채 쪼그려 앉은 몸의 덩어리 감은 살렸고, 소녀들의 표정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다. 서울 내수동 집 한옥 안채 앞에서 하녀들이 공기놀이하는 정경을 학생 장욱진은 인상파 화가처럼 포착했다.

그림은 동료 화가 박상옥(1915~68)이 간직하다가 그의 사후 삼성가로 들어갔다. 장욱진의 장녀인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은 “1970년경 박상옥 선생님의 아드님이 ‘사 주실 수 있겠냐’며 가져왔다. 아버지는 ‘하도 이 그림을 좋아해서 줬는데 끝까지 간직하고 있었네’ 하고 반기며 흐려진 인장 대신 새로 서명을 해주셨다”고 돌아봤다.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삼성을 연결해 드렸다”고 덧붙였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장욱진을 화가로 만들어 준 ‘공기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