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개막한 지 140일이 넘어서 볼 사람은 다 봤겠다 싶은데, 또 보고 싶어 온답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얘기입니다. 폐막을 나흘 앞둔 지금도 하루 평균 1900명 가까이 찾아와 전시장은 늘 북적입니다.
‘공기놀이’ ‘소녀’ 등 전시장 들머리의 초기작은 2021년 이건희 삼성 회장 사후 기증품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488점 중 작가별로는 장욱진의 그림이 69점으로 유영국·이중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증작 중 26점, 리움미술관과 이 회장 유족들이 빌려준 1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의 장욱진 회고전을 얘기할 때 이건희 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마스터피스’는 설을 맞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기사에 댓글을 달아 주시는 독자 다섯 분께 최근 출간된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사진)을 보내드립니다. 장욱진 그림과 함께 행복한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어린 시절 아들 방에 오래 걸어뒀던 그림이에요.
이건희 컬렉션의 첫 전시 ‘한국미술명작’을 보러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이 그림 앞에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한다. ‘공기놀이’ 얘기다. 다가가 화가의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장욱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평생 까치와 나무와 가족을 공책만 한 화폭에 담으며 “작은 것들을 친절하게 봐주라”던 장욱진이다. 언제 이런 낯선 그림을 그린 걸까?
지금 5학년인데 졸업을 하고는 미술학교로 가겠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할 바가 있을 줄 압니다.
1938년 장욱진(1917~90)이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 중등부에서 특선, 그중에서도 최고상에 꼽혔을 때 양정중 미술부 지도교사가 신문에 한 인터뷰다. 86년 뒤, 제자가 이렇게 사랑받는 화가가 될 줄 스승은 짐작이나 했을까. ‘공기놀이’는 이때의 수상작이다.
흰 저고리와 행주치마에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하늘색·분홍색 치맛자락을 추스른 채 쪼그려 앉은 몸의 덩어리 감은 살렸고, 소녀들의 표정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다. 서울 내수동 집 한옥 안채 앞에서 하녀들이 공기놀이하는 정경을 학생 장욱진은 인상파 화가처럼 포착했다.
그림은 동료 화가 박상옥(1915~68)이 간직하다가 그의 사후 삼성가로 들어갔다. 장욱진의 장녀인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은 “1970년경 박상옥 선생님의 아드님이 ‘사 주실 수 있겠냐’며 가져왔다. 아버지는 ‘하도 이 그림을 좋아해서 줬는데 끝까지 간직하고 있었네’ 하고 반기며 흐려진 인장 대신 새로 서명을 해주셨다”고 돌아봤다.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삼성을 연결해 드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