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뺨치게 좋았다” 사라진 이중섭의 그 ‘소’

  • 카드 발행 일시2024.02.29

이중섭은 '화가들의 화가'였습니다. 세 살 위 김환기(1913~74)는 "우리 화단의 일등 빛나는 존재"라고 극찬했고, '설악산 화가' 김종학(87)은 "피카소 뺨치게 좋았다"고 돌아봤습니다.

이건희ㆍ홍라희 마스터피스 ⑥

전국을 순회한 이건희 컬렉션 현대미술 전시에선 많은 관람객들이 이중섭(1916~56)의 황소ㆍ흰소부터 찾았습니다. 가장 친숙한 화가 이중섭. 소는 그가 가장 즐겨 그린 이미지죠. 소의 해부학적 특질을 꿰고 있는 듯, 자신 있게 붓질한 소 시리즈는 한눈에 ‘이중섭 그림이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합니다.

소가 이중섭이고, 이중섭이 소였습니다. 의욕과 자신감이 넘칠 때도, 무너져내릴 때도 이중섭은 소를 그렸습니다. 통영의 억센 소, 진주의 붉은 소, 그리고 만년의 병든 소까지…. 이중섭의 소 함께 보시죠. 이번 회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년)를 기획한 김인혜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강연하는 임근준 미술평론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 화단의 일등 빛나는 존재” 김환기도 극찬한 ‘화가들의 화가’  

이중섭의 1940년작 ‘서 있는 소’(유채)는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도쿄ㆍ경성전 출품 당시 흑백 도판으로만 남아 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의 1940년작 ‘서 있는 소’(유채)는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도쿄ㆍ경성전 출품 당시 흑백 도판으로만 남아 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스물네 살 이중섭이 그린 ‘서 있는 소’다. 그의 소 그림 중 가장 오랜 것으로, 자료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1940년 도쿄 자유미술가협회전 출품작이다. 소 좀 안다는 듯, 서예가의 일필휘지가 연상되는 자신감 넘치는 붓질이다. 자유미술가협회는 경성에서도 순회전을 열었다. 이 전시를 본 화가 김환기(1913~74)는 세 살 아래 이중섭의 그림을 이렇게 극찬했다.

이중섭씨 작품 거의 전부가 소를 취재했는데 침착한 색채의 계조(階調), 정확한 데포름(변형), 솔직한 이마쥬, 소박한 환희-좋은 소양을 가진 작가이다. 쏘쳐오는 소, 외치는 소, 세기의 운향(韻響)을 듣는 것 같았다. 응시하는 소의 눈동자, 아름다운 애린(哀燐)이었다. 씨는 이 한 해에 있어서 우리 화단에 일등 빛나는 존재였다. 정진을 바란다. (김환기, ‘구하던 1년’, 「문장」, 1940년 12월)

‘화가들의 화가’ 이중섭, 그 중심에 소가 있었다. 김환기도 이중섭 그림을 간직했다. ‘설악산 화가’ 김종학(87)이 “김환기가 갖고 있던 이중섭 그림은 피카소 뺨치게 좋았다”고 회고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루오처럼 시커멓게 데생하는 조선 청년이 나타났다.

1937년 이중섭이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했을 때 교수들 사이에 이런 평판이 돌았다. 화가 김병기(1916~2022)의 말이다. 평양 공립종로보통학교 동창 김병기는 이중섭보다 2년 먼저 문화학원에 와 있었다. 그도 이 시절 이중섭의 그림을 ‘피카소의 데생, 루오의 먹선’으로 축약했다.

중섭에게는 피카소의 신고전주의 데생과 루오의 강한 묵선이 작용돼 있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1871~1958)는 스테인드글라스 직공으로 일하며 그림을 배웠다. 굵은 윤곽선에 푸른 색조로 약하고 가난한 이들, 가톨릭 도상을 즐겨 그렸다.

글 싣는 순서

-“우리 화단의 일등 빛나는 존재” 김환기도 극찬한 ‘화가들의 화가’ (읽는 시간 63초)
-피카소의 소, 이중섭의 소…20세기 화가들의 분신 (여기까지 90초)
-힘과 자신감 넘쳤지만 끝내 병든…이중섭은 소였다 (162초)
-남은 이야기: 이중섭은 왜 ‘국민 화가’가 됐을까 (232초)

동기생들도 이중섭을 “피카소 화집을 자주 봤던 친구”로 기억했다. 문화학원 선생이 “피카소 흉내를 낸다” 지적하자 이중섭이 소묘 수십 장을 꺼내놓고 “이것들이 어째서 피카소 흉내인가” 맞섰다는 일화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