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등쌀에, 문자 여론조사로 당론 정하는 ‘요즘 의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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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해 5월 2일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당시 공동대표가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여권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기초연금을 월 10만~20만원씩 차등 지급하는 기초연금법안의 통과를 요구했다. 김·안 대표는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강경파 의원들이 의총에서 반발했다. 이틀 연속 마라톤 의총을 했지만 결론을 못 내렸다.

양김 시대 그 후 <하>
당 흔드는 소수 … 팔로어십이 없다
예전엔 낮에 싸워도 저녁엔 대화
요즘은 같은 당내서도 따로 놀아
본인이 대표 뽑고 본인이 흔들어
합리적 의사결정 못하고 대립만

 김·안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의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찬반 의견을 물었다. 뚜껑을 열자 찬성(73명)이 반대(35명)보다 훨씬 많았다. 다수가 찬성 입장이었지만 의총만 열면 강경파의 목소리만 들렸던 셈이다. ‘문자메시지’ 조사까지 거쳐 중론이 확인돼 결국 기초연금은 야당이 법안 통과에 동의해 줬지만 이후 다시 열린 의총장에선 “법안을 처리하면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겠다”(김용익 의원)는 강경발언이 잇따랐다.

 야당에 비해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선 소수 의견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국민 여론조사에선 부정적 여론이 50%를 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은 극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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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과의 문답.

 - 소신 있게 발언하고 그걸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문화가 부족한 것 아닌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다.”

 같은 당 박민식 의원도 “당내에 소통 구조나 문화가 부족하다”며 “소통을 말하면 괜히 튀는 걸로 찍히고, 의원 스스로 그런 말을 잘 안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돌격 앞으로! 하면 모이는 분위기도 아닌데 스스로 위축시킨다”고 덧붙였다.

 이런 새누리당에서도 의원총회에선 강경파가 득세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부산에서 만나 안심번호를 활용한 공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 9월 30일.

 친박계인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당에서 대표한테 그런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계 일부 의원은 오찬을 함께하며 집단행동을 별렀다. 이후 의원총회가 열렸다. 친박계의 강력한 반발에 김 대표는 “안심번호 공천제는 완전한 합의가 아니었다”며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한 친박계 의원은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 대표가 덜컥 야당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표를 해 반대했던 건데 여론조사방법으로서의 안심번호제는 도입할 수도 있다.” 안심번호란 제도가 적절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반대부터 하고 봤다는 뜻이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시대가 저문 이후 여야가 모두 합의 도출에 애를 먹고 있다. 리더십도 문제지만 ‘팔로어십(followership)’도 문제로 꼽힌다.

 리더십이 흔들리고 팔로어십도 없는 상황에서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의원총회를 소수 강경파가 장악해 버렸다.

 지난해 9월 30일 새정치연합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는 여당 의원들만 있던 본회의장에 들어가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데리고 나와 30분간 세월호특별법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그는 한 시간 후 또다시 이 원내대표를 만나러 본회의장 문을 열어야 했다. 원내대표 간 협상안에 대해 강경파 의원들이 의총에서 퇴짜를 놨기 때문이다. 문희상·박병석 의원 등 중진들이 “이래 가지고 뭘 해먹겠나” “여야가 합의한 것은 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강경파를 설득한 뒤에야 여야 협상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정치연합 김성곤(4선) 의원은 25일 “당 대표가 염연히 있고, 따를 때는 따라줘야 하는데도 서로 자기가 대장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예전 국회엔 그래도 나이 든 의원이나 다선 의원에겐 자리를 양보한다든지 눈에 안 보이는 질서가 있었는데 요즘은 모임에 나이 든 사람들이 와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있다”며 “‘시니어리티(seniority)’라는 게 없으니 무질서한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여야 모두 분파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면서 끊임없이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며 “보스 체제로 돌아갈 순 없는 만큼 당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김성탁·강태화 기자 sunty@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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