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상봉’과 ‘해후’ ‘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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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은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슬픔과 아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평생을 그려도 못 만나는 경우도 있다. 만남 가운데 무엇보다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어제 끝났다.

 만남과 관련해 많이 쓰이는 용어가 ‘상봉’ ‘해후’ ‘조우’다. ‘상봉(相逢)’은 서로 만남을 뜻하는 말이다. 이산가족처럼 주로 오래도록 떨어져 있던 가족이 만나게 될 때 잘 어울린다. “60여 년 만의 상봉에 목이 메어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와 같이 쓰인다.

 ‘해후(邂逅)’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뜻밖에’는 ‘생각이나 기대와 달리’를 가리킨다. “헤어졌던 친구와 10여 년 만에 해후했다”처럼 사용된다.

 그렇다면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해후했다”고 하면 ‘해후’는 바르게 쓰인 것일까. ‘해후’가 뜻밖의 만남을 뜻하기 때문에 사전적으론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상봉 행사를 통해 만난 것이지만 오랫동안 만날 기약 없이 지내다 뜻밖의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해후’라 볼 수도 있다.

 ‘조우(遭逢)’는 우연히 서로 만남을 뜻한다. ‘우연히’라고 하면 어떤 일이 뜻하지 않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조우’는 “길을 가다가 옛 친구를 조우했다” 처럼 쓰인다.

 이와 같이 ‘해후’와 ‘조우’는 뜻밖에 또는 우연히 만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단순한 만남의 뜻으로는 쓸 수 없다. “두 사람이 만남으로써 과학과 종교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곧 개봉될 영화가 관객들과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에서는 ‘해후’나 ‘조우’가 단순히 만남을 뜻하는 말로 사용됐다. 단어의 고유한 의미와 맞지 않는다. 어딘지 멋지게 표현하려고 ‘해후’와 ‘조우’를 끌어다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자어도 우리말의 일부이므로 어휘의 다양성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기피할 필요는 없지만 쓰려면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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