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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이루어지다’는 팔방미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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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꿈은 이루어진다.” 한·일 월드컵 한국-독일의 4강전 때 펼쳐졌던 카드섹션 문구다. 우리의 가슴을 붉게 물들였던 이 말은 이후 유행처럼 번지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는 메시지가 돼 왔다.

 “꿈은 이루어진다”에서처럼 ‘이루어지다’는 뜻한 대로 되다(실현되다)는 의미의 자동사다. “투타 조화가 이루어졌다는 평가다”와 같이 일정한 상태나 결과가 생기거나 만들어지다(성사되다), “각국 전문가로 이루어진 조사단”처럼 일정한 성질이나 모양을 가진 존재가 되다(구성되다)는 뜻도 있다. 문제는 이들 의미 외에 이루어지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말과도 짝을 지어 쓴다는 점이다.

 “국제축구연맹의 지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회장을 새로 뽑는 것만으론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다”의 경우 “국제축구연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로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 피동형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채~”보다는 능동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체도 살아나고 의미도 명확하게 전달된다.

 “시즌 중 감독의 사퇴가 이루어질 경우 최대 피해자는 선수들 아니겠는가”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면 방만한 운영으로 인한 재정 낭비 요인이 제거될 것이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즌 중 감독이 사퇴할 경우~” “조직 개편을 하면(조직을 개편하면)~”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 어법이다. 대개 ‘이루어진 것’(주어)에다 ‘-하다’나 ‘-되다’를 붙여 동사로 바꾸면 정상적인 어법의 문장이 된다. “구단 간 투수 쟁탈전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체지방 감소가 이루어지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 역시 ‘이루어지다’가 어울리지 않는다. “구단 간 투수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하면 된다.

 ‘이루어지다’를 적절히 사용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능동태로 바꿔 보면 된다. “꿈이 이루어졌다”를 “꿈을 이루었다”로 바꾸면 자연스럽지만 “계좌 이체가 이루어졌다”를 “계좌 이체를 이루었다”로 바꾸면 어색하다. “계좌 이체를 했다”고 하는 게 바르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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