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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나누기와 가르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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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가을을 맞아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한창이다. 가을 운동회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열띤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었다(갈랐다)” “여자와 남자로 편을 갈라(나눠) 시합했다”에서와 같이 ‘나누다’와 ‘가르다’는 서로 바꾸어 써도 무방한 경우가 있다.

 ‘나누다’가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다’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구분해 분류하다’ 등의 의미로 쓰일 땐 ‘가르다’로 바꿔 쓸 수 있다. ‘가르다’에도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누다’가 “이웃끼리 인사 나누고 지냅시다”에서와 같이 ‘말이나 이야기, 인사 등을 주고받다’, “고통은 주위 사람과 나누면 작아지고, 즐거움은 나누면 커진다고 한다”에서처럼 ‘즐거움이나 고통, 고생 등을 함께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가르다’와 바꿔 쓸 수 없다. “형제란 한 부모의 피를 나눈 사람들이다”에서와 같이 ‘같은 핏줄을 타고나다’를 뜻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르다’ 역시 “화살이 과녁을 향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갔다”에서처럼 ‘물체가 공기나 물을 양옆으로 열며 움직이다’, “결투로 잘잘못을 가르던 때도 있었다”에서와 같이 ‘옳고 그름을 따져서 구분하다’는 의미로 쓰일 경우 ‘나누다’로 바꿔 쓰면 어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 시작 무렵에 터진 골이 이날의 승부를 갈랐다”에서처럼 ‘승부나 등수 등을 서로 겨루어 정하다’는 뜻일 때도 그렇다.

 ‘나누다’와 ‘가르다’는 하나를 둘로 분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에 바꿔 쓸 수 있으나 이렇게 둘로 분리하는 경우에도 미묘한 차이로 인해 바꿔 쓸 수 없을 때가 있다. “칼로 생선의 배를 갈랐다”에서처럼 둘로 분리하되 본래의 것에서 떨어지지 않는 경우 ‘가르다’를 쓴다. “생선을 두 토막으로 나눴다”에서와 같이 본래의 것에서 따로 떨어지게 될 때는 ‘나누다’를 사용한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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