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위기 본질, 유동성에서 펀더멘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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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본질이 유동성에서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로 바뀌고 있다.”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본격화한 신흥국 시장의 위기에 대한 현장의 평가다. 홍콩·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 시장에서 뛰고 있는 국내 증권사·자산운용사 해외법인장들은 “고통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1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신흥국 주가 하락세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한국의 코스닥 지수도 지난 10일 746.34에서 21일 627.05로, 16% 가까이 급락했다. 그 여파로 지난 21일 미국 다우지수도 지난주에만 100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2008년 10월 이래 주간 최대 하락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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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국 시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부각될 때마다 흔들렸다. 금리 인상을 시사한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 한마디에 신흥국 통화와 주가가 곤두박질했던 ‘버냉키 쇼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엔 전망이 더 어둡다는 게 해외법인장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신흥국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만이 아니라 중국의 경착륙으로 신흥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허약해질 수 있다는 게 더 큰 변수다. 유지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장은 “지금까지는 신흥국으로부터 달러 이탈로 인한 유동성 고갈이 변수였지만 이젠 중국발 펀더멘털 충격이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은 신흥국과의 경제 연관성이 높다. 상당수 신흥국이 중국에 원자재와 완제품을 수출해 경제를 지탱한다. 중국의 부진이 신흥국의 경제 악화를 의미하는 이유다. 정승교 NH투자증권 홍콩법인장은 “중국의 위안화 절하가 결정타였다. 시장에서는 중국의 경기 부진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경훈 한국투자증권 인도네시아 사무소장은 “시장은 연착륙을 기대했지만 위안화 절하로 경착륙 징후가 뚜렷해졌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에 공포감이 더 커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 소장은 “한국·인도네시아·브라질 등 중국과 밀접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는 충격이 깊어 파장이 오래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신흥국 회복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세계 1, 2위 경제대국 중 한쪽(중국)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만큼 나머지 한쪽이 살아나야 신흥국도 부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행히 미국 경제는 금리 인상을 예고할 정도로 호전됐다. 정 법인장은 “미국 경기가 살아나면 대미 수출과 미국으로부터의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 신흥국 경기도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과의 경제 연관성이 낮은 신흥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왔다. 인도가 대표적이다. 중국보다 미국 경제 의존도가 높고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멕시코도 미국 경기 회복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무광 트러스톤자산운용 싱가포르법인장은 “신흥국 간에도 차별화가 나타나는 만큼 투자 비중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자금을 일부 선진국 쪽으로 옮기는 등 분산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선언·이승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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