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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드라마로 배웠네]<28>학원 오빠 마음을 얻으려 그녀가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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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애(김슬기 분)를 부정하고 싶은 나봉선(박보영 분)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 한다. 살면서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나’라는 현실을 증오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나의 단짝 친구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BS.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BS를 만났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교실에서 나란히 앉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BS와 나는 처음부터 꽤 잘 맞았다. 같이 있으면 하루 종일 까르르 웃음이 그칠 줄 몰랐다. 집에 돌아가면 서로 교환 일기장을 썼다. 나는 BS가 정말 좋았다.

껌 딱지 같았던 우리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BS에 대해 많은 걸 알면 알수록 나는 그 아이가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꾸만 우리 부모님이 작아 보였고 내가 불행해 보였다.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빙의해 꼬셔주겠어

1. 외모: BS은 우리 학교에서 손 꼽히는 ‘얼짱’이었다. 화이트데이면 사탕바구니를 들고 찾아오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BS를 보러 우리 교실에 기웃거리는 남자들도 있었다. 당시 나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꽁지 머리를 한 무생물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BS를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모에 신경 좀 써야 하나’ 고민했다.

2. 재력: BS의 집안은 지방에서 손 꼽히는 유지였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이 여느 졸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부족한 것도 아쉬운 것도 없는 집안이었다. 이와 달리 우리 집은 아빠의 월급으로 연명하는 평범한 서민 가정이었다. BS를 만나고 집에 들어온 어느 날, 나는 저녁 식사를 하며 물었다. “엄마, 우리는 어디에 별장 없어?” 엄마는 차분하지만 강단 있게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밥이나 먹어.”

3. 지력: 당시 BS는 국영수과는 물론 예체능까지 과목별 개인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내가 알 수 없는 시험 정보나 학습 요령에 빠삭했다. BS가 개인 교습을 받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테니스, 자세 교정, 해금 연주 등 모든 걸 1대 1로 배웠다. BS와 나 사이엔 학교 수업만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다양한 선진 문물(?)을 빠르게 접하는 BS를 보며 나는 열등감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접근 시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BS가 부러워졌다. 부러움은 질투로 바뀌었다. 질투는 망상을 만들어냈다. 내가 BS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얼마나 다른 삶을 누리며 살았을까 수도 없이 상상했다. 물론 처음엔 나도 이런 나 자신을 거부했다. 애써 BS와 멀어지려고도 했다. 현재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오나귀)’에서 나봉선(박보영 분)이 처녀 귀신 신순애(김슬기 분)의 존재를 부정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걸 뒤바꾸어 놓는다. 한 오빠를 좋아하면서 나의 판단력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만난 그 오빠는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사실 학원에 공부하러 갔다기보다 오빠를 보기 위해 학원을 기웃거렸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거다. 오빠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달복달하던 어느 날, 나는 뜻밖의 정보를 듣게 된다. 오빠가 예전에 BS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BS가 되기로 한 거다. 나는 BS의 외모, 말투, 성격, 분위기 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둘씩 나를 BS처럼 바꿔나갔다. 그 오빠를 만날 때면 마치 BS가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못할 게 없었다. 나중에는 내가 정말 BS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정말 제대로 미쳐있었던 거다.

드디어 키스 성공~!

‘오나귀’의 나봉선(박보영 분)도 마찬가지다. 강선우(조정석 분)에게 호감을 느낀 나봉선(박보영 분)은 신순애(김슬기 분)에게 자신에게 빙의해 대신 강선우(조정석 분)를 꼬셔 달라고 부탁한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자신 없는 본인과 달리 신순애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강선우는 신순애가 빙의한 나봉선에게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이들(나봉선+신순애)은 강선우의 뜨거운 키스를 받아내기에 이른다.

현실에서도 나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다. BS가 빙의한 것처럼 굴었던 나는 오빠에게 고백을 받았고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오빠와 만나면서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돌이켜보면 ‘언제 나의 원래 모습을 들킬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무거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사랑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나의 연애는 새드 엔딩이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오나귀’는 어떨까. 나봉선+신순애, 강선우는 모두 행복할 수 있을까.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하고픈 말이 있다. 사랑에 관한 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나’이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나를 속이고 시작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랑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다.

사랑 빙의 기자 ohmyghost@joongang.co.k*r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필자는 jmnet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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