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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KPOP으로 배웠네]<4>외모·성격 완벽남을 나는 외면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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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리즈 시절은 있다. 이른바 내 인생의 빛나는 전성기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련한 청춘의 봄날 나는 전성기였고 연애도 쉽게 성공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이상형도 만났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내 맘에 쏙 들었던 이 남자를 편의상 ‘태양 군’이라 하자.

그는 말했다. 나만 바라보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지만 태양 군은 나에게 헌신적이기까지(!) 했다.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나만 바라보는 이 남자 때문에 몸서리쳐지게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저 모든 게 신기하고 감사했다.

외모도 성격도 완벽남

하루에도 몇 번씩 널 보며 웃어 난
수백 번 말했잖아 You‘re the love of my life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점점 만남에 익숙해졌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특별함과 감사함을 앗아갔다. 태양 군은 언제고 내 옆에 있을 당연한 존재가 됐다. 모든 커플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관계는 녹슬었고 권태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른 남자들이 자꾸 보여

그런데 하필 난 전성기였다.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화-알짝 열려 있었다. 그것도 썩 괜찮은 남자와 말이다. (그땐 그랬다.) 문제는 내가 태양 군과 깨끗이 헤어질 자신이 없었다는 거다. 헤어지긴 아쉬우니 태양 군도 만나고 뉴페이스도 만났다. (그래, 나 나쁜 년이야)

가끔 내 맘 변할까 봐 불안해할 때면
웃으며 말했잖아 그럴 일 없다고
가끔씩 흔들리는 내 자신이 미워
오늘도 난 이 세상에 휩쓸려 살며시 널 지워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열렬히 사랑을 한 건 아니다. 뉴페이스만 가능한 낯선 긴장감이 좋았다.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어색하고 서투른 단계가 그리웠다.

역정 난 그남자

태양 군은 달라진 나를 의심했다. 갑자기 조별 과제가 늘고, ’네가 모르는‘ 친구 혹은 가족과 약속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그때마다 나는 "나를 못 믿는 거냐"며 더 크게 역정을 냈다. 난 들키지 않았고 (내가 기억하기에는) 태양 군과 적당히 멀어진 채 평형 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Baby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Lady
가끔 내가 연락이 없고 술을 마셔도
혹시 내가 다른 어떤 여자(남자)와
잠시 눈을 맞춰도 넌 나만 바라봐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처음에는 나의 선택이 꽤 영리해 보였다. 난 잠시 설렘을 느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오히려 태양 군이 최고라는 확신도 생겼다. 역설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며 태양 군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피 엔딩은 아니다. 태양 군은 나의 소홀함을 극복할 수 없는 권태의 결말로 받아들였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며 태양 군의 공백을 깨달았을 때, 태양 군은 나의 공백에 익숙해졌다. 내가 태양 군만 바라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태양 군은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남자가 돼 있었다.

너만은 언제나 순수하게 남길 바래
이게 내 진심인 걸 널 향한 믿음인 걸
죽어도 날 떠나지마

잘 지내니

덧붙이자면, 나는 한동안 태양 군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배신감까지 느꼈다. (어이없다는 거 안다.) ’나의 결론은 너였는데 결국 날 버린 건 너'라는 식의 배신감이었다. 밤에 술에 취해 ”나를 안 보고 평생 살 수 있느냐“며 진상도 부렸다. 하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없이도 잘 살더라.

또 덧붙이자면, 태양의 ‘나만 바라봐’가 발매된 2010년, 나와 태양 군은 권태기를 앓고 있었다. 그 때로 되돌아 간다면,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난 이렇게 피쳐링하고 싶다. ‘알았어. 너도 나만 바라봐’라고.

찌질 기자 zzizil@joongang.co.k*r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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