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 다녀온 김제 환자, 격리·관찰 대상에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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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 탓에 전북 김제 지역의 병원 네 곳에서 진료를 받으러 돌아다닌 남성(59)이 8일 전북 보건당국으로부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1차 양성 및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있던 가족을 병문안했다가 당시 ‘수퍼 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에게서 감염됐다.

하지만 그는 병원 측의 격리 또는 모니터링 대상에도 올라 있지 않았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도 그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8일 현재 확진환자에게 붙는 1~87번에도 들어 있지 않다.

 이처럼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병원 명단을 공개하는 등 메르스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으나 방역망엔 구멍이 뚫려 있다. 삼성서울병원도 ‘수퍼 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 주변을 대상으로 격리·모니터링 대상자 893명을 분류해 발표했으나 격리망을 뚫고 확진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7일 메르스 확진환자로 분류된 76번 환자(75·여)도 보건당국과 병원의 느슨한 격리대상자 관리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그는 지난 5일 엉덩이뼈 골절상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시내 병원 응급실 세 곳을 오갔다. 강동경희대병원을 거쳐 삼성서울병원에 왔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고, 결국 건국대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76번 환자는 지난달 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내 ‘내과 1구역’에 머물렀다. 14번 환자가 있던 ‘내과 2구역’(27일)과 ‘중앙치료구역’(28~29일)과는 분리된 공간이다. 직선 거리로는 10여m 이상 떨어져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14번 환자와는 구역도 나뉘어져 있고 거리도 멀어 자가격리 대상으로 분류된 것으로 안다. 어떤 경로로 접촉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확진환자를 진료하거나 접촉한 의료진과 환자 바로 옆에서 진료받았던 환자들을 밀접접촉자로, 응급실에 있었던 그 밖의 환자와 보호자는 자가격리 대상으로 각각 분류했다.

 76번 환자의 사례는 자가격리 대상자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태를 보여 준다. 격리 대상이 되면 자택에서 대기하면서 보건요원의 1일 2회 이상 모니터링에 응해야 한다. 복지부 콜센터가 6일과 7일 이틀간 76번 환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결되지 않았다. 자택이 아닌 곳에 있는 환자는 당국의 방역망 점검에서 누락될 수 있다.

 전북 김제의 확진 남성은 병원 등에서 367명과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76번 환자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239명, 건국대병원에서 147명을 접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감염 의심자에 대한 관리망이 뚫린 탓에 격리 및 모니터링 대상자가 대량으로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선 보건당국의 격리대상자 관리가 철저해야 하나 환자 발생 19일이 지나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 보건소는 격리 또는 모니터링 대상자나 그 가족에게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교육하거나 필요한 보호 물품을 지원해야 한다. 한 격리대상자는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정종훈 기자, 전주=장대석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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