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시너지 내려면 북한판 대기업 만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판 대기업’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재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경협을 통해 남북 간 상생(相生)을 모색하는 것뿐 아니라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한국 경제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데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는 17일 “개성공단의 값싼 임금이나 무진장한 북한의 지하자원 등 우리 기업이 당장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머뭇거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로 5년째를 맞고 있는 5·24 대북 조치 등 제재의 틀을 당장 걷어내기 어렵다면 정경분리나 해외기업을 통한 합작사업 등의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산업연구원이 펴낸 ‘2000년대 북한 기업 현황’에 따르면 북한의 기업 수는 2891개다. 제조업이 2258개로 가장 많고 ▶발전소 및 에너지 기업 261개 ▶광산 360개 등이다. 북한 내 산업 동향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만성적인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면 주력인 제조업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후 가난에서 탈피해 산업화에 성공해 고도성장의 길을 걸어온 한국 경제의 노하우를 북한 경제에 접목시킨다면 ‘인공호흡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남북 간 경협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다면 우리 기업은 ▶제품 수명 주기의 연장 ▶기존 생산설비의 수명 연장 ▶설비 수출 증대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재계는 전망한다. 과거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이미 성숙기나 쇠퇴기에 도달한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판매함으로써 이런 효과를 거뒀다. 한국 경제에선 수명이 다한 중고 설비의 이전과 한국산 설비의 이전도 가능해진다. 손길승 전경련 통일경제위원장은 “남북한이 같은 DNA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도 우리와 같은 자기 주도적 경제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15위권의 글로벌 중견국가로 성장한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북한이 전수받을 경우 남북한이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란 주장이다.

 구체적 방안으로 우선 한국의 부품소재 산업과 북한의 완제품 산업을 연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예를 들면 우리 기업이 영상·음향 부품 등을 북한의 가전 생산라인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우리 업체는 판로를 확보하게 되고, 북한은 안정적인 부품 조달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북한이 풀지 못하고 있는 공정상의 난제를 우리가 해결해줄 수도 있다.

 최대 걸림돌은 5·24 대북 제재 조치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 등 도발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우리 정부가 전향적 대북 접근을 결정하는 통 큰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 이어 최근에는 일본 기업들도 대북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어 자칫 남북 경협을 통한 공진(共進)이란 화두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간판급 산업시설 상당수가 일제시대에 지어진 만큼 일본 기업들이 속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남북관계가 개선된 다음 한국 기업들이 진출한다면 이미 때가 늦을 수 있다”며 “중국·일본·러시아 등의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김준술·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ko.soos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