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 박제순비 철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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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을사오적' 박제순의 선정비(善政碑)가 인천향교에 세워져 있는 것이 뒤늦게 밝혀져 처리 방법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시 남구 관교동 옛 인천도호부청사 옆의 인천향교 앞마당에는 역대 인천도호부사들의 선정비 18기가 같은 크기로 세워져 있으며 이 가운데 구한말의 대표적 친일파인 박제순의 것도 포함돼 있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높이 138㎝의 이 비에는 '행부사 박공제순 영세불망비'(行府使 朴公齊純 永世不忘碑)라고 새겨져 있다.

박제순은 1888년 5월부터 1890년 9월까지 인천시장 격인 인천도호부사를 지냈다. 그 뒤 1905년 일본공사 하야시가 주도한 을사늑약에 적극 참여해 이완용.권중현.이지용.이근택과 함께 을사오적으로 불리며 1910년에는 내무대신으로 한일합병조약에 서명했다.

박제순 선정비의 존재가 알려지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선정비 철거 움직임이 일고 있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을사오적을 정치를 잘한 관리라며 기리는 비석이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천의 낮은 역사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인천시가 철거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직접 철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연대 회원들은 실제 12일 인천향교를 찾아 박제순 선정비 앞에 '을사오적 매국노 박제순의 비'라는 표지를 붙이고 '즉각 철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에 처리 방안을 질의해 놓고 있다"며 "박제순의 친일 행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해 후손에게 교훈을 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지만 문화재청의 자문을 토대로 최종 처리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제순(1858~1916)은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1883년(고종 20년) 과거에 급제, 호조.예조.이조.형조 참판과 전라도.충청도의 감사 등을 지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충청감사로 농민군 진압에 앞장서 '새야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박으로 너를 치자'라는 동요 가사에서의 '박'이 박제순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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