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꿈 되찾는 학생들 "형, 수학 문제집 추천해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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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3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생존 학생들은 조금씩 공부에 몰두하며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증한 백악관 목련 묘목은 단원고 학생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다.

13일 오전 8시30분쯤 경기도 안산 단원고 앞.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 사이로 학생들이 삼삼오오 교문을 향해 걸어왔다. “그 TV 프로그램 봤니?” “어제 남자친구랑 영화 봤다.” 주말 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이 대화의 주제다. 일부는 편의점에 들러 과자와 빵을 사 들고 학교로 향했다. 교문에 붙은 ‘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현수막과 학생들 가슴·가방의 노란 리본만 빼면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단원고 앞에서 등·하교 지도를 하는 주민 김정학(59)씨는 “축구 하고 수다 떨고 목소리가 커지는 게 점점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슬픔과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이다. 하지만 희망과 미래를 찾는 변화는 시작됐다. 상처가 큰 생존 학생들도 그렇다. 지난 겨울방학 때 몇몇 학생이 공부를 돕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을 찾아와 물었다. “형, 수학을 못하는데 어떤 문제집을 써야 하나요.” “오빠, 국어 점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친구들이 왜 사라졌는지 설명 좀 해달라”며 울부짖던 아이들이었다. 딱히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 고3이 되면서 어느 사이엔가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김은지 단원고 마음건강센터장은 “완전하지 않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스스로의 미래와 꿈을 찾아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떤 학생들은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면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높아질 것 같다. 학교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다. 이들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올 초 서울 연세대와 고려대를 둘러봤다.

 그런 분위기가 학교 안에 조금씩 퍼졌다. 지난해 하지 않았던 야간 자율학습을 올 들어 재개했다. 자신만의 학습 계획을 세우고, 끊었던 학원도 다시 다니고 있다. 일부는 그룹을 지어 자원봉사 대학생들에게 “과외 지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이를 받아들여 다음달부터 과외 지도를 할 참이다.

 전체적인 수업 분위기도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고 후 한동안 수업 때도 휴대전화를 거두지 않았으나 이젠 여느 학교처럼 1교시 전에 휴대전화를 수거한다.

단원고 학생들은 강아지 ‘단’ ‘원’이와 어울리며 마음을 치유한다. 한 마리가 장염·폐렴을 앓자 학생들이 간호해 건강을 되찾게 했다.

 강아지들도 학생들의 심리적 회복을 돕고 있다. 애완동물 심리치료를 위해 지난 2월 인근 애견숍에서 학교에 기증한 골든 리트리버 ‘단(암컷)’과 ‘원(수컷)’이다.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돼 원이가 설사와 토하기를 반복했다. 장염과 폐렴이라고 했다. 얘기를 들은 학생들, 특히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학생들 심리상담을 맡은 정신과 전문의에게까지 강아지를 데려가 “치료해 달라”며 떼쓰다시피 했다.

 원이는 약 한 달 만에 완쾌돼 전처럼 재롱을 피웠다. 학생들 얼굴에는 오랜만에 웃음이 피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안산교육회복지원단 김은실 장학사는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강아지라는 생명을 구했다는 보람을 느끼며 위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한편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또 다른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스레 살피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증한 목련 묘목에 교사들이 직접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줬다. 단원고 전광수 교감은 “학생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된 목련이 추위를 견디지 못할까 교사들 대부분이 전전긍긍하다가 비닐하우스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임명수(팀장)·이찬호·전익진·최경호·최모란·최충일·최종권·김호·유명한 기자, 사진=최승식·강정현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 l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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