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찾아온 아베 "3국 외교회의 성공 개최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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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장례식에서 토니 애벗 호주 총리,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최근 있었던 3국(일·한·중) 외교장관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에 감사드리며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해준 것을 평가하고 있습니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네,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합의한 대로 필요한 조치를 잘 취해 나가도록 합시다.”(박근혜 대통령)

  29일 엄수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장 행사에서다. 의례적인 내용의 짧은 인사였지만 한·일 정상은 서로를 외면하진 않았다. 이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날 기회는 세 번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장례식장에 도착한 직후였다. 박 대통령은 장례식 시작 시간보다 1시간10분 앞선 낮 12시50분쯤(현지시간) 국장이 거행된 싱가포르 국립대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아베 총리는 오후 1시13분 창이국제공항에 내렸지만 장례식 시작 전 두 정상끼리 만날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박 대통령은 다른 아시아 국가 정상들과는 인사를 나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과 인사를 나누며 ‘조문외교’를 펼쳤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은 없었다.

 두 번째 기회는 장례식장 안에서 있었다. 박 대통령은 문화센터 2층에 마련된 장례식장으로 올라가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 제리 메이트파레 뉴질랜드 총독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착석한 뒤 왼쪽에 앉은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 오른쪽에 앉은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역시 식장에 있던 아베 총리와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의전 서열이 다르기 때문에 두 정상은 각기 다른 줄에 멀리 떨어져 앉았다. 어떻든 두 정상 모두 굳이 다른 자리까지 찾아가 인사하진 않았다.

 조우가 성사된 것은 마지막 기회,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에서였다. 장례식이 끝난 직후 세계 각국에서 온 조문사절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싱가포르 측이 마련한 자리였다.

 먼저 다가온 쪽은 아베 총리였다. 그는 지난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를 화두로 꺼냈고, 박 대통령도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언급한 ‘외교장관회의 합의 사항’은 3국 정상회의 개최를 의미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3국 회의 개최를 희망했던 일본은 회의 성사 뒤 여러 채널로 우리 쪽에 사의를 표했다. 아베 총리도 같은 뜻을 직접 전한 것”이라고 대화에 의미를 뒀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미·중 조문단과도 만났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톰 도닐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다. 미국 측은 박 대통령에게 “한·미 동맹을 평가하며 동맹의 강화를 위해 앞으로 지혜와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도 웃으며 같은 뜻으로 답했다.

 박 대통령은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부주석과 최근 한국이 참여 의사를 밝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관련해 대화를 나눴다. 리 부주석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가서명을 축하하고 AIIB도 긴밀히 협력하자”고 하자 박 대통령은 “AIIB가 성공할 수 있도록 잘 협의하자”고 화답했다.

 탄 싱가포르 대통령 부부는 박 대통령에게 “직접 주빈으로 와주셔서 감사하다. 감동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 두 정상 만남 큰 관심=일본 언론은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을 인터넷판 속보로 전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지지통신은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서울발 기사를 통해 두 정상의 만남을 전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으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30일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신용호 기자,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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