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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물 흐르는 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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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水)’과 ‘가다(去)’가 더해져 만들어졌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하도록 하는 것이 법이 가진 본뜻이다.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맨 첫 수업시간 ‘법이란 무엇인가’에서 으레 듣는 얘기라고 한다.

 우리 사회 논쟁의 화두가 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특히 애당초 공직자를 겨냥한 법 적용 대상을 언론사와 사립학교 등 민간 영역까지 넓히면서 모든 논란의 블랙홀이 된 형국이다.

 언론사 입사가 목표인 대학생 인턴기자 둘과의 식사 자리에서 물어봤다. 김영란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젊은 세대일수록 찬성이 압도적일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찬성 인턴기자=“가까운 친척이 대기업 해외 주재원으로 계시는데요. 밤 늦게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는 십중팔구 술값 계산을 대신 해달라는 거랍니다. 언론인을 규제 대상에 넣는 건 당연한 것 같은데요.”

 ▶반대 인턴기자=“원래 김영란법 취지가 공직 사회 부패를 근절하자는 것인데, 민간 영역까지 대상에 넣는다면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되는지 불분명해질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텐데 그걸 어떻게 일도양단 식으로 가를 수 있을까요?”

 둘의 얘기를 듣고 김영란법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웠던 기자 개인의 몇 가지 생각이 정리되는 듯했다.

 우선 김영란법 통과를 “잘했다”고 평가(64%)한 다수 여론(리얼미터 3일 조사 결과)이다. 특히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적용 대상에 넣은 것을 “바람직하다”고 한 여론이 69.8%에 이른다. 이 대목에선 “친척이 대기업 해외 주재원”인 인턴기자 얘기가 떠올라 낯이 화끈거린다. ‘갑(甲)’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 언론에 대한 수많은 ‘을(乙)’의 불신이 밑바탕 정서에 깔려 있는 것 같아서다.

 반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언론인까지 대상이 확대된 건 이 법을 성안한 국민권익위원회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부 부패 기자들의 뒷돈 수수 근절을 위해서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굳이 김영란법을 들이댈 게 아니라 형법이나 변호사법 위반 등 기존 실정법을 좀더 엄정하게 집행할 일이다.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은 쓰임새가 다르지 않은가.

 법 정신이 ‘물 흐르는 대로’라고 할 때의 물은 순리일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웅덩이를 만나면 느긋하게 차기를 기다린 뒤 다시 출발한다. 원안에서 하도 많이 변형돼 ‘김영란 없는 김영란법’이 돼버린 이 법안은 앞으로 보완할 게 많아 보인다. 시행까지 남은 유예기간 1년6개월은 그동안 굽이쳐온 물줄기가 웅덩이를 만난 격이 아닐까. 스스로 채워 흐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중지를 모아 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또 하나. 물은 때로 불보다 무서운 ‘수마(水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법으로 우리 사회 모든 것을 강제하자는 ‘형벌 만능주의’는 구분하자는 뜻의 사족이다.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