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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들, '입법학' 공부 좀 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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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신에게는 아직 1년6개월이 남아 있습니다.” (언론사 기자)

 “직무 관련자들이 3만원 이상의 식사를 접대하다 적발되면 양측이 모두 과태료를 부과받게 됩니다. 이는 접대받는 쪽이 매번 ‘배가 아파서 많이 못 먹었다’며 1만원만 내면 피해갈 수 있습니다.”(대기업 홍보 임원)

 3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상당 기간 시행을 유예한 것에 대한 비아냥과 함께 직격탄을 피하는 편법 아이디어가 속속 창안되고 있다. 적용 대상이 무려 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공직자와 언론인 등의 일상생활 규율 법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중요도에 비해 입법 과정은 주먹구구식이었다. 한국 국회가 적잖은 법률을 졸속으로 만들어왔다고는 하나 이번 같은 막무가내 입법은 처음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법 통과 직전 “마음 같아선 (법안 내용은 빼고) 법안 명만 통과시키고 싶다”는 자탄이 나오고 통과 하루 만에 개정 의견이 여야에서 동시에 나오니 그럴 법도 하다. 그날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표결을 하던 의원님들 안중에 국민은 없었다. ‘여기도 위헌 소지, 저기도 위헌 소지’라는 빨간 경고문이 덕지덕지 나붙은 법률안을 속도전 하듯이 통과시켰다. 밤 12시까지 귀가해야 하는 신데렐라라도 된 듯 이번 회기 내 매듭이라는 강박관념(※자신들은 여론의 압박이라고 주장)에 쫓겼다. 허둥대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압도적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에선 활활 타오르는 권력의지만 보였다.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함께.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부정 청탁을 근절하는 내용의 원안대로만 갔어도 지금 같은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정무위 소위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적용 대상에 넣으면서 위헌 시비의 싹이 텄다.

 공직자라 함은 국민의 세금 으로 급여를 받는 사람을 역사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입법 목적이 공직사회 투명성 확보인 특별법에 비공직자 일부를 섞어 넣으면서 뒤죽박죽 ‘잡탕법’이 돼 버렸다. 국가공무원법 등 행정법의 성격에 죄와 형벌을 규정하는 형법을 섞어 놓으니 법전 어느 항목에 편제할지도 고민스럽고 법 집행자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때도 졸속입법은 있었다. 2007년 7월 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법은 임시국회 종료 2분을 앞두고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에 이어 토론 절차 없이 표결에 부쳐진 직후다.

 지난달 말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폐지 위헌 결정도 따지고 보면 국회의 직무유기가 빚어낸 결과다. 헌재는 1990년 이후 네 번의 합헌 결정을 통해 간통죄 폐지 여부를 “기본적으로 입법권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어느 의원도 총대를 메지 않은 채 25년이 흘렀고 헌재가 대신 폐기처분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 공부하면 된다. 최근 해외 대학에 입법 과정을 체계적·논리적으로 가르치는 ‘입법학’ 과목이 신설됐다고 하니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모양도 사납고 이상한 ‘법의 난개발’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