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이어 문화·IT·의료 … 대 이어 '중동특수'다시 한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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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쿠웨이트 등 중동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 등이 성남 서울공항에 나와 환송했다. [박종근 기자]

꼭 40년 전이었다. 1975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중동 건설 시장에 진출하라’고 권하기 위해서였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한국은 갑자기 불어닥친 ‘오일 쇼크’로 휘청거렸다. 74년 말의 외환보유액은 3000만 달러뿐이었다. 정 회장은 망설임 없이 중동으로 향했다. ‘실패할 위험이 너무 크다’는 반대도 그를 막지 못했다. 현대는 75년 10월 바레인 아랍수리조선소 건설 수주를 시작으로 79년까지 6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중동 진출은 대한민국 경제의 ‘오아시스’가 됐다. 74년 2억6000만 달러였던 해외 수주액은 1년 만에 8억50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피눈물 같은 ‘오일 달러’를 벌어온 덕분이다.

 이번엔 박근혜(63) 대통령이 1일 ‘중동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를 돌고 온다. 모두 걸프협력위원회(GCC·Gulf Cooperation Council) 소속 국가들이다. 40년 세월을 두고 이뤄지는 ‘대통령 부녀’의 중동 경제 외교. 박 대통령이 ‘대(代)’를 이어 중동 특수를 재현해낼지 주목받고 있다.

 이번 순방에서 가장 큰 방점이 찍힌 건 역시 ‘경제’다. GCC 국가의 잠재력은 막강하다. 먼저 세계 원유 매장량의 33%를 차지한다.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총생산(GDP, 2013년 기준)은 GCC 6개국 모두 4만 달러(한국 3만3791 달러)가 넘는다. 이 중 카타르는 14만5894달러로 세계 1위다. 우리에겐 ‘자원의 젖줄’과도 같다. 전체 원유의 71%, 천연가스의 49%를 GCC에서 들여온다.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에 쿠웨이트 국왕을 비롯해 4개국 정상과 연쇄 정상회담을 한다. 여기서 보건의료·제조업·정보기술(IT)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40년 전 대한민국은 가진 게 노동력뿐이었고, 건설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성장한 것이다.

 이번 순방길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을 포함해 민간 기업인 116명이 동행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민간 차원의 비즈니스 포럼도 잇따라 열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등 3개국에서 비즈니스 포럼을 연다. 포럼에는 박용만(60) 대한상의 회장, 권오준(65) 포스코 회장 등 30여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참석한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출국에 앞서 “70년대의 1차 중동 붐이 제1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큰 기초 역할을 했다”며 “2000년대 시작된 두 번째 중동 붐이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일단 상황은 나쁘지 않다. 최근 저유가 흐름이 이어지면서 GCC 국가들 모두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석유산업 외의 다양한 산업을 적극 육성하려는 분위기다. ‘한류’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이미지도 좋은 편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40년 전 우리 근로자들은 근면성으로 인정받았다”며 “이젠 세련된 문화 콘텐트와 고도의 IT 기술로 무장한 나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이번 순방이 지지부진했던 한국·GCC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FTA가 체결되면 한 해 11억1000만 달러(약 1조2200억원)의 관세를 줄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다. 같은 GCC 국가라도 나라별로 꼼꼼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쿠웨이트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형 자동차 판매가 성장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전체 인구의 30%에 달한다. e러닝 등 교육용 콘텐트 시장의 전망이 밝다. UAE에는 외국인 건설 인력만 300만 명가량 있다. 세계 제1의 부국인 카타르는 2030년이면 인구의 25% 이상이 당뇨병을 앓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협회 송송이 연구위원은 “GCC 시장은 고소득층과 외국인 노동자로 소비 계층이 분화돼 있는 만큼 ‘프리미엄 제품’과 ‘중저가 제품’을 구분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이수기·박미소 기자, 쿠웨이트=신용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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