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변화 승부수 … 하이닉스 빼고 다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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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위기 극복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한 핵심 계열사 경영진을 전면 교체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의 부재와 주력 계열사의 경영 위기 등을 감안해 부회장 승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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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는 9일 사장단을 포함해 임원 인사와 각 계열사별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 사장에 정철길(60) 사장, SK텔레콤은 장동현(51) 사장, SK네트웍스는 문종훈(55) 사장, SK C&C엔 박정호(51) 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신임 사장단은 내년 1월 1일부로 공식 업무에 들어간다.

 어깨가 가장 무거운 것은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를 맡은 정철길 사장이다. 정 사장은 에너지 전문가로 꼽힌다. 경남고-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의 종합기획부로 입사(79년)해 직장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과장시절이던 지난 1990년 고(故) 최종현 당시 SK 회장의 지시로 미얀마 유전개발 사업을 맡았지만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최종현 회장은 문책을 하기보다 그를 특진시켰다. 절치부심한 그는 원유 트레이딩 기획팀을 거쳐 그룹 구조조정본부까지 올라갔다.

 SK의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SK C&C에서 금융사업과 정보기술(IT) 사업총괄을 하고 대표이사직까지 오른 그를 그룹에선 “SK이노베이션을 맡길 적임자”라고 평했다. SK는 정 신임 사장이 원유가격 폭락에 따른 업황 악화로 올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예고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사업 구조를 빠르게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인사와 함께 사업 재편을 전담하는 포트폴리오 이노베이션(PI)실을 신설했다. SK이노베이션 이항수 홍보실장은 “성과 개선과 사업모델 제고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해 ‘안정 속 성장’을 이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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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인사에서 가장 이목이 집중된 장동현(51) SK텔레콤의 신임 사장은 그룹 안팎에서 ‘합리적인 전략가’로 통한다. 정 사장과 같은 유공 출신(91년 입사)에 외환위기 시절 그룹 구조본에 근무했던 것이 눈에 띈다. 39세에 상무로 승진하며 일찌감치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에 올랐다.

 2010년부터 4년간 SK텔레콤의 전략기획, 마케팅부문장을 맡으며 3세대(3G) 데이터 무제한 상품으로 데이터 시장의 판을 키웠다. LTE 도입 이후에는 ‘음성·문자 망내 무제한’ 시대를 열었다. 올초부턴 인터넷기업인 SK플래닛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겨 모바일커머스 플랫폼 사업을 지휘했다. 이통3사 중 이동통신과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를 모두 경험한 CEO는 장 사장이 유일하다.

 1년 만에 돌아온 친정엔 그가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정체 상태인 이동통신(MNO)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성과도 내야 한다. 이날 SK텔레콤이 발표한 조직개편안에서 장 사장의 고민과 해법이 드러났다. 장 사장은 플랫폼 총괄을 신설했다.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SK플래닛과의 협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내부 세대교체에도 시동을 걸었다. 이동통신 사업총괄(이형희 부사장)을 비롯해 전무급 주요 사업 부문장 절반을 새 얼굴로 바꿨다.

 SK네트웍스를 맡은 문종훈 사장은 워커힐 호텔 사장을 지냈다. 이후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통합사무국장 겸 전략팀장을 맡아 그룹의 주요 살림을 챙겨왔다.

 SK C&C의 박정호 사장의 발탁에 대해 그룹 안팎에선 “예고된 인사”로 풀이했다. 최태원(54) SK그룹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 사장은 올초 최 회장의 SK C&C 사내이사 자리를 이어받은 바 있다. 그는 그룹에서도 손꼽히는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올해 사상최대 실적으로 일약 SK의 ‘효자’가 된 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하기도 했다.

 SK플래닛의 자회사인 SK커뮤니케이션즈도 신임 대표에 박윤택(49)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내정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이한상 대표는 모회사인 SK플래닛 코퍼레이션 센터장으로 승진 이동했다.

 SK는 그룹 특유의 ‘최고 의사결정 체제’인 수펙스추구협의회도 쇄신했다. 이번 인사에서 김창근(64) 수펙스협의회 의장은 올해로 2년째인 수펙스협의회의 7개 위원회 가운데 3개 위원회 위원장을 교체했다. SK텔레콤을 이끌었던 하성민(57) 사장이 후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상근직’으로 윤리경영위원장을 맡고, SK E&S의 유정준(52) 사장이 글로벌성장위원회를 이끌도록 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문석(60) 상임위원이 맡도록 했다.

 한편 SK는 위기상황을 고려해 지난해보다 승진자를 18% 줄였다. 올해 신규로 ‘임원’이 된 87명을 포함해 총 117명이 승진을 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도 37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김현예·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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