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 하는 국회가 일하는 기업인 훼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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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증인 수가 매년 늘고 있다. 본지가 3일 입수한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의 ‘국정감사 증인출석 및 신문 실태’에 따르면 국감에 출석한 증인 숫자는 2004년 129명에서 지난해 31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국감의 경우 하루에 16.7명이 증인으로 나왔다. 2004년(6.5명)의 2.5배다. 최근엔 증인 가운데 기업인의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감증인 중 47.2%가 전·현직 기업인이었다.

 20일의 국감 일정은 정해져 있는데 증인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질의는 짧고 답변 시간은 줄어든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증인 채택 관행이 불러온 결과다.

 지난해 10월 14일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영만 한국마사회 부회장(당시 회장 직무대행)은 12시간26분을 꼬박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경주마를 관리하는 마필관리사의 높은 재해율에 대해 따졌지만 그가 답변한 시간은 총 71초에 불과했다.

 ▶한정애 의원(당시 민주당)=“마사회가 1년에 벌어들이는 순이익이 3000억인 걸 아시지요?”

 ▶김 직무대행=“하지만 그것 가지고, 각종 모든 어떤….”

 ▶한 의원=“(말을 끊으며)사람이…! 3000억 벌게 하기 위해 누가 다치는 거예요, 누가. 3000억을 다 쓰는 한이 있어도 사람이 한 명도 안 죽어야지. 25일까지 (재해예방 종합대책을) 만들어 오십시오.”

 ▶김=“알겠습니다.”

 김 대행의 답변은 “알겠습니다”와 끊어진 말들이 고작이었다.

 여야 간 또는 피감기관과의 기싸움으로 국감이 파행하면서 증인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적잖다. 시민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감 땐 8개 위원회에서 한 시간 이상 회의속개가 지연되는 등 모두 32시간59분간 파행했다.

 지난해 10월 17일 보건복지위 국감. 야당이 복지부가 작성한 서류를 문제 삼아 국감이 중단됐다.

 ▶오제세 보건복지위원장=“정식으로 사과하시는 것이지요?”

 ▶이영찬 복지부 장관 직무대행=“예, 그렇습니다.”

 ▶이목희 의원(당시 민주당)=“저는 저걸 사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일부 위원 퇴장)

 장관 대행이 사과까지 했는데 파행한 국감은 결국 5시간이 지나서야 재개됐다.

 7일 시작되는 올해 국감에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새누리당 윤영석 원내대변인은 “기업들은 장기 경기침체 등으로 전쟁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국회가 도움은 못 줄망정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도 “필요한 증인은 당연히 신청해야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구 부르는 건 안 된다”며 “면밀하게 검토한 후 대상자를 결정해야 내실 있는 국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증인으로 신청한 의원이 누구이고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감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일 안 하는 국회가 일하려는 기업을 훼방 놓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국회가 자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권필·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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