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배웠다는 제주 이주여성, 사투리 완전 정복 나선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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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주다문화가족센터에서 결혼 이주여성들이 제주도 사투리를 배우고 있다.

“왕 갈랑 갑써(와서 나누어 가세요).” “경허지 맙써(그렇게 하지 마세요).”

 14일 제주시 이도2동 (사)제주다문화가족센터. 국어담당 고금순(53) 교사의 제주도 사투리 발음을 결혼 이주여성 30여 명이 큰 소리로 따라 했다. 이주여성들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곳에서 제주도 사투리를 배우고 있다. 하루 한 시간씩 일주일에 4번 찾는다. 이주여성들은 시집오기 전 모국인 베트남·필리핀 등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하지만 ‘제주어 장벽’에 애를 먹어왔다. 특히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시어머니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트남 출신 윈티모이(28·제주시 조천읍)는 “시어머니가 ‘감저’ 가져와라 하셔서 감자를 가져갔는데 핀잔만 들었다”고 말했다. 제주어로 감저는 고구마를 말한다.

 이런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다문화가족센터가 제주어 수업 시간을 별도로 마련한 것이다.

 상당수 결혼 이주여성은 제주어 배우기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에서 온 시에라메이 마코노(29·제주시 조천읍)는 1년 내로 제주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업 내용을 빠짐없이 노트에 적어 집에서 복습까지 한다. 그는 “제주 사투리 발음이 표준어와 다른 게 너무 많아 또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제주어를 꾸준히 배워 시어머니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요망진(똑 부러진)’ 며느리도 있다. 중국 옌볜 출신인 김정림(43) 제주다문화가족센터사무처장은 “7년 이상 제주어를 공부하고 사용해서 그런지 시어머니 말씀이 거의 다 들린다”고 말했다. 그의 시어머니 한순희(80·서귀포시 성산읍)씨는 “말이 잘 통하니 며느리와 훨씬 가까워졌다”고 했다.

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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